파란만장한 역정을 걸어온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생전에 많은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다. 각계 인사들이 기억하는 김 전대통령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이낙연(민주당 국회의원) - "죽게 됐는데 아내는 기도만…" 유머 감각
DJ가 대통령에 두번째 도전한 1987년 나는 DJ 전담기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치를 했다. 당무회의 참석자를 일일이 불러 성심껏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는 누구보다 꼼꼼했다. 2000년 당헌 당규를 개정할 이해찬 당시 정책위의장과 책 1권 분량의 서류를 DJ에게 읽어줬는데, 메모도 하지 않던 DJ가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걸 보고 놀랐다. 유머감각도 남달랐다. 사형선고 당시를 회상하면서"남편은 죽게 생겼는데 집사람(이희호 여사)이 '하나님 뜻대로 맡기겠다'고 기도하니 서운하더라"는 농담을 했던 분이다.
●안경률(한나라당 국회의원) - "민주화 운동하는 청년들의 자부심·선구자"
1985년 민주화 추진협의회 노동부국장, 특별위원을 맡으면서 DJ를 공동의장으로 모셨다. 물론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상도동계였지만 DJ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젊은 청년들의 자부심이었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선구자였다. 김 전대통령이 1987년 통일민주당을 탈당했을 때 원망을 많이 했지만 역시나 그는 위대한 정치가였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학벌을 타파한 산 증인이나 다름없다. 민추협동지회를 통해 DJ, YS 두 분을 화해시키고자 했는데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박선숙(민주당 국회의원) - "사려 깊고 겸손… 비서관에도 항상 존대말"
주변 사람에게 늘 사려 깊고 겸손했다. 청와대 비서관 근무 당시에도 항상 존대말로 대해 주셨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아 "책을 읽고 싶어서 다시 감옥에 가야겠다"는 농담을 자주 하셨다. 통찰력까지 갖춰 해외 정상과 인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특히 2000년 10월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김 전 대통령을 통해 대북관계에서 대화 및 협력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탁승호(단골식당 '양미옥' 주인) - "명절때 꼭 선물 보내주실 만큼 다정한 분"
기름기가 없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의료진이 '양'을 추천해줬다며 2004년 봄부터 계속 우리식당을 찾으셨다. 매주 일요일 점심시간으로 오시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양 2인분과 물냉면, 양곰탕으로 드시는 메뉴도 정해져 있었다. 입맛은 까다롭지 않으셨고, 오실 때마다 종업원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시거나 다른 손님들이 함께 사진 찍자고 요청하는 것도 기꺼이 다 받아주셨다. 설날과 추석 때면 잊지 않고 꼭 동양란도 보내주실 만큼 정도 많으셨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6월21일 마지막으로 오셔서 식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소선(고 전태열 열사 어머니) - "자신이 쓴 글 팔아 집 구할 돈 마련해줘"
우리 아들이 죽고 나서 1970년 11월13일 장례를 치렀는데, 장례를 치른 지 3일째 되던 날 대통령이 집에 찾아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해주고 가셨다. 그때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여러 조언을 들으러 찾아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직접 손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내보이며) 대통령이 취임식 때 7명에게만 시계선물을 했는데, 이 시계가 그 중 하나다. 집을 구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을 때, 자신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대통령께서 직접 자신이 쓴 글을 팔아 돈을 마련해 준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문문술(전 청와대 조리사·서정대학 조리학과 교수) - "입맛 안맞아도 다 드시고 맛있었다 배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4년 국민회의 대표 시절 내가 조리과장으로 일하던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첫 인연을 맺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 외빈들을 위해 자택에서 양식 요리를 준비하기도 했는데, 취임 직후 연락이 와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드시는 편인데 입맛에 맞지 않아도 다 드시고 "맛있었다"고 격려해주는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청와대 들어가서 아직 입맛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 매운탕을 드신 후 "맛있었는데 조금 덜 맵게 하면 더 맛있을 것 같다"며 배려해 주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정리=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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