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마을 뒷산에 고승이 암자를 짓고 숫사자와 함께 살았다. 앞산에 있는 큰 범이 언제부턴지 사람들을 해쳤다. 고승은 숫사자와 함께 18일간 싸워 범을 제거했으나 그도 치명상을 입었다. 고승의 장례 때 숫사자도 따라 죽었는데, 하늘에서 사천왕이 내려와 이들의 시신을 껴안고 마을 앞 섬으로 날아갔다. 주민들이 통곡하며 뒤따르자 사천왕은 "언젠가 큰 인물이 돌아와 세상을 평안하게 할 것"이라며 위로했다. 그 섬 좌측 바위절벽은 사람 얼굴 옆 모습, 전체는 사자가 웅크린 형태다. 이후 주민들은 '큰 바위 얼굴 섬'이라 부르고 있다.
▦전남 신안군 하의면. 9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가 모여 있고, 그 대표 섬이 하의도(荷衣島). 목포항에서 뱃길 58㎞, 직선거리 38㎞다. 울릉도 반쪽 크기인 섬의 서쪽 모래두미해수욕장은 일몰 광경이 특히 빼어난 곳, 그 앞 바다에 '사람 얼굴, 사자 몸뚱이'의 얼굴바위가 떠 있다. 하(荷)는 연꽃, 의(衣)는 옷, 연꽃 잎으로 만든 옷은 중국에서 '부귀영화를 뜬구름처럼 여기며 오직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구도자들의 옷'으로 알려져 있다. 섬의 북쪽 후광리(後廣里), 앞산과 뒷산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태어나 자랐다.
▦외딴 섬에서 태어나 해풍에 시달린 소년은 강하다. '섬마을 선생님'이나 '섬 처녀' 따위의 간지러운 표현은 뭍(섬 사람들이 육지를 일컫는 말)의 낭만적 정서다. 뭍에서 보면 바다는 개방과 자유의 상징이겠지만, 섬 사람에게 파도는 사방을 둘러싼 폐쇄와 속박이다. '바다 저 편'에 대한 상상은 하염없는 야망이 되고, 파도를 넘는 일은 목숨 건 도전이 된다. 어려서 파래와 조개를 줍던 드넓은 갯가는 몸이 커지면서 왜소해지고, 갈 수 없는 수평선은 감옥의 창살과 다름없다. 하의도의 DJ와 거제도의 YS가 가졌던 야망과 도전의 출발이었을 터이다.
▦하의도의 명성은 '300여 년의 농지 탈환운동'에서도 확인된다. 정부 소유 농지를 주민들에게 돌려달라는 투쟁이 1623년 조선 인조 때 최초로 시작됐고 1957년에야 뜻을 이루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끈질긴 투쟁이었다. 섬사람들의 DJ에 대한 애정 또한 유례가 없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우리 대중이"라고 부른다. 그 어떤 대통령도 고향에서 그렇게 불리기 어려울 것이다. '큰 인물이 돌아와 세상을 평안하게 할 것'이라는 전설은 이제 역사로 기록됐다. 한국일보는 어제 1면 머리 제목으로 '서거'라는 표현 대신 '굿바이, DJ'라고 썼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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