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올해 상반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는 기업들의 성적만 봐도 그렇다.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기업들이 '어닝 서프라이즈'로 불릴 정도로 영업 이익률이 좋다.
방송사들의 경영 수지는 어떠한가. MBC가 올해 상반기(1∼6월) 영업이익 기준, 394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3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었다. 올해 상반기 SBS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196억원 줄어 114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KBS는 45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광고불황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광고수입이 576억원이나 줄어 들었지만 348억원의 방송제작비를 절감하고 인건비도 82억원을 줄여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그래서 3년 만에 세전 이익 기준 33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실로 방송산업계의 '어닝 서프라이즈'다.
회사가 이익을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영업실적이 좋아서 낼 수도 있고 자산을 처분하거나 비용을 절감해 장부상으로만 흑자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불용자산을 처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비효율적인 비용구조를 고쳐 소요예산을 줄이는 것도 옳다.
그런데 자산 중 현재 활용가치는 크지 않지만 회사의 미래를 대비해 보유하고 있는 중요재산은 팔지 말아야 한다. 비용도 필수 불가결한 비용은 줄일 수 없다. 특히 미래 성장을 담보하는 투자는 줄이지 말아야 한다.
방송사의 미래투자는 제작비 투자이다. 물론 급변하는 디지털 방송환경에 대비한 하드웨어 설비투자도 게을리 말아야 하지만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 제작비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할 수 없다. KBS가 아주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낸 것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믿고, 또 경영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세전 이익과 제작비 절감이 거의 비슷한 액수로 나타나 제작비만 쥐어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이 제작비 절감에는 현재 제작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비용 효율화가 대부분일 것이다.
내년, 그 내년 프로그램 라인업을 위한 제작비 투자에 대한 삭감도 있을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 제작 추세가 장기 기획이 필요한 대형화로 가고 있는데 미래를 대비한 제작비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다른 방송사의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KBS는 당장 이익을 덜 내더라도 좋은 프로그램에 투자를 미룰 수 없다.
지난해 방송대상을 받은 KBS 명품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나 올해의 대상 후보인 '누들로드' 모두 2~3년간 기획, 투자를 한 '20억 프로젝트'의 결과 물이다. 양질의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느라 적자를 냈다고 하면 오히려 국민들이 더 성원해 줄 것이고, 그것이 KBS의 오랜 숙원인 수신료 인상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온갖 새로운 미디어가 난무하는 '이 풍진 세상'에서 공영방송의 좌장 격인 KBS가 할 일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경영실적에만 집착해 엄벙덤벙 살아가야 하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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