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서거에 대해 여야 정치인들과 정치학자들이 하는 말이다. DJ가 우리 정치사에 남긴 의미는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라는 평가답게 다양하면서도 그 무게 또한 묵직하다.
먼저 DJ의 서거는 크게 보면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향해 달려왔던 시대, 남북관계가 반공주의와 대결주의에 맞서 대화와 평화로 옮겨가던 시대를 그는 상징해왔다. 이제 그의 서거와 함께 민주화와 남북관계 대전환으로 이동하던 시대는 역사 속의 한 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민주화의 한 축이었던 DJ가 사라짐으로써 민주개혁진영에서 '포스트 민주화 시대'로의 전환은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DJ의 타계는 정치사적으로는 '거인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의미도 된다. 민주화 투쟁이란 시대적 환경과 '3김 시대'로 대표되는 정치 환경이 아니었다면 DJ와 같은 정치적 거물은 나오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보면 DJ의 정치역정은 철저히 역사의 산물이다. DJ가 겪어온 격랑의 시대를 우리 사회가 다시 맞지 않는 이상 당분간 정치사에서 '거인의 시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DJ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정치를 좌우했던 '3김 시대'도 이제 완전히 황혼 단계로 접어들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DJ JP(김종필 전 총재)가 각각 영남 호남 충청 지역 등을 기반으로 권력을 나눠 가졌던 '3김 시대'는 참여정부의 출범을 전후해 DJ, JP마저 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일단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뒤에도 3김씨가 크든 작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3김 시대는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3김씨가 생존한데다 3김 시대의 부정적 유산인 지역주의와 보스 중심의 정치문화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제 3김의 한 축이었던 DJ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질긴 생명력을 보였던 '3김 시대' 구도도 붕괴할 운명에 처했다.
DJ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야권과 민주개혁 진영의 두 축이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한데다 이번에 DJ까지 떠남으로써 야권의 양대 축이 무너져 내린 셈이다. DJ의 부재는 민주개혁 진영에겐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때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로 다가오고 있다. 고난과 형극으로 점철됐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투쟁 전력,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한 5년간의 대통령 재임, 국제사회의 인적 네트워크 등은 누구도 따라가기 어려운 경륜과 능력이었다.
더구나 그는 민주개혁진영의 인적ㆍ물적 토대를 일궈온 창업자의 지위도 겸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이강래 원내대표, 김민석 박주선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야권의 중진ㆍ원로그룹인 정동영 문희상 정대철 김원기 김근태 한화갑 한광옥 박상천 김상현씨 등이 DJ의 가신 출신이거나 DJ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인사들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이제 민주당은 기대고 조언을 구할 큰 어른을 잃은 셈이 됐다"고 애도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DJ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민주당은 앞으로 '홀로서기'가 불가피해졌다. 정치사의 두 거목을 모두 잃은 데 대한 상실감은 더 설명이 필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된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이제 민주당은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DJ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남북 화해 노력 등으로 국제사회에 이름을 드높였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서거 뉴스에 깊은 관심과 애도를 표시하는 것은 바로 DJ가 국제사회에 남긴 족적 때문이다.
DJ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으나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문화라는 우리 정치의 낡은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앞으로는 이 모든 공과가 차분하게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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