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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추도사 - 영원한 평화와 안식 속에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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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추도사 - 영원한 평화와 안식 속에 잠드시길

입력
2009.08.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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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오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오는 것이지만,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다시 일어서시기 힘들 병상에 누우시게 된 것은 전해 듣고 있는 일이었지만, 막상 숨을 거두시었다는 소식을 들음에, 아픈 마음이 새삼스럽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제 역사의 인물이 되셨다.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면, 민주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민주화 하면, 김 전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역사는 그것을 거두어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 노력이 없이는 큰 흐름이 되지 못한다. 역사를 바른 길로 가게 하는 데에 김 전 대통령은 순교자의 고통과 인내와 의지를 가지고 온 힘을 다하였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에 역사는 지도자를 탄생하게 한다. 하나가 되는 역사와 국민과 지도자의 신비를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는 역사의 대 전환, 대 혁명을 의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유혈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민주화를 위하여 크고 작은 희생을 바친 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다음에는 사회 평화를 뒤흔들 만한 보복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다 같이 긍지를 가지고 생각할 만한 일이지만, 김 전 대통령의 깊은 사려와 큰 덕이 없었더라면, 이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북관계를 크게 바꾸어 민족의 앞길에 평화와 통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일을 꼽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큰 정치적 비전에서 나온 일이다. 동시에 그것은 평화와 화해의 이상에 대한 깊은 인간적 믿음에도 관계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김 전 대통령이 열어놓은 길의 저쪽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첫 의도와 마지막 결과 사이, 구비진 역사의 길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시련들을 말할 뿐이다.

김 전 대통령은 큰 정치의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부드러움을 잊지 않은 분이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은 언제나 위엄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1992년 가을에 마침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뵙게 되었다. 영국을 떠나면서 작별 인사를 드렸을 때, 멀리까지 배웅하면서 서 계시던 자상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00년 여름 대통령으로 재직하실 때에, 외국에서 온 작가들을 안내하여 나는 청와대를 방문하였다. 그때 외국인 방문객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교수가 있었다. 대통령 관저 방문 계획을 말했을 때, 부르디외 교수는 방문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권력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득의 결과 그는 방문에 동의했다.

대통령을 뵙게 되었을 때, 부르디외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던 개인적 체험, 한국 사회와 문화와 근대화의 관계, 경제에 대하여, 가장 많은 질문을, 정해진 시간을 넘겨가며 내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의 답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연한 것이었다. 부르디외 교수는 청와대 현관을 나서면서, 당신들은 훌륭한 대통령을 가졌다고 말하였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간 다음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축하 전보를 보내고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상냥하면서도 더없이 엄정한 부르디외 교수의 인품으로 보아 이것은 진정한 사려에서 나온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이기도 하고 우리 역사에 지워진 커다란 짐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역대의 대통령 가운데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국민의 애도 가운데 국장으로 편안하게 모시게 되는 최초의 대통령이다. 살아 계실 때 짊어지신 고통은 가장 큰 분이었다고 하겠지만, 이제 숨을 거두시고 난 그 분의 장례는, 흔히 쓰는 말로, 호상 중에도 호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시고 떠나가심에, 이제 영원한 평화와 안식 속에 길이 잠드시기를 기원한다.

김우창(문학평론가ㆍ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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