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직 연임을 목적으로 세금소송을 취하해 회사에 거액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배임 혐의는 정 전 사장이 지난해 이명박 정부의 퇴진 압력 및 표적 감사 논란 끝에 해임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사유였던 만큼, 검찰이 해임 처분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는 18일 "피고인이 경영적자로 인한 퇴진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세소송의 승소가 확실한데도 KBS 이익에 반하는 조정을 서둘러 강행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누구도 특정 재판의 판결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데다 정황상 소송 이후 과세 당국이 법인세를 재부과 할 가능성이 높았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법원에서 중재하는 조정은 특성상 배임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한 데 대해 배임죄를 물은 검찰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당시 과세 관청의 의견을 포함해 총 10가지 기준으로 따져봤으나 업무상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법원의 판단을 납득할 수 없어 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무죄 판결로 검찰이 애초에 정권 의도에 맞춘 기획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정 전 사장 해임 처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김기중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시작한 수사였으며, 유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소를 위한 기소'였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서울행정법원에 계류 중인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도 정 전 사장의 승소 가능성이 커졌다. 해임 처분의 위법성을 가리는 데도 조세소송의 부당한 처리 여부가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형사 재판에서 승소했다고 행정소송에서도 승소할 것이라고 예단할 순 없지만, 배임 여부가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르면 9월 중 선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은 2005년 6월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취소 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항소심 도중 법원의 조정 권고로 556억원만 환급 받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해 회사에 1,892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됐으며, 이에 앞서 감사원의 해임 요구와 KBS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해임됐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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