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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0> 건강한 삶을 위하여-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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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0> 건강한 삶을 위하여-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입력
2009.08.1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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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사는 동안 '잘(well)' 살기를 원한다. 여기서 '잘' 산다는 건 물질의 풍요와 더불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포함한다. 감염성 질환이 흔하던 과거에 사람들은 빈곤과 위생 문제를 극복하면 사회적 행복지수가 증가하고, 이에 비례하여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18세기 이후의 물질적 번영, 19세기 상하수도의 보급과 공중보건운동으로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되자 인간은 건강의 한 척도인 질병에서 일정 수준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지금 부유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경제 수준이 높아져도 더 이상 행복지수는 증가하지 않는 모습이 발견된다. 선진국의 많은 사람들이 저개발국에 아직도 위협이 되는 감염성 질환을 앓는 대신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로 약화된 면역 때문에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이는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가 더 이상 물질적 궁핍이 아닌 심리사회적 요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 사회의 건강 상태가 개별 인간의 건강 관리보다 전체 사회의 성격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회역학의 선구적 학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평등해야 건강하다> (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ㆍ후마니타스 발행)에서 추상적으로 인지되던 건강 문제를 구체적 통계를 제시하며 분석하고 있다.

역학은 어떤 지역이나 집단에서 발생한 질병의 원인이나 변화를 연구하는 의학 분과 중 하나인데, 윌킨슨 교수는 심리사회적 요인이 사회 전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사회역학자다.

1976년 그는 '신사회' 잡지에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내용으로 두 쪽짜리 논문을 게재했는데 이는 영국 정부가 건강불평등에 대한 리포트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400여쪽에 이르는 <평등해야 건강하다> 는 그의 30년 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건강 문제를 의학뿐 아니라 사회학의 측면에서 바라봤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 상대적 건강 불평등의 메커니즘

윌킨슨 교수는 건강을 위협하는 첫째 요소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득 불평등을 꼽았다. 2001년 현재 미국의 23개 지역 중 가장 잘 사는 지역의 16세 백인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86세인 반면, 가장 가난한 지역의 흑인 여성은 7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됐다. 무려 16년의 차이가 난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의 대처리즘이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상대적 불평등이 팽배해진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의 병폐에 주목한다.

가령 뉴욕의 할렘처럼 미국 극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다는 조사를 보여준다. 절대 소득은 할렘가 사람들이 낫지만 상대적 빈곤감, 즉 불평등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이들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은 직접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심리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주면서 간접적으로도 건강 불평등과 관계 맺는다.

윌킨슨 교수는 '사회적 지위 격차'와 '친분관계', '생애 초기에 경험하는 스트레스'를 심리사회적 요인으로 들면서 이들이 유발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 사회에 대한 방대한 조사는 물론 개코원숭이 등 유인원을 실험한 결과를 구체적인 근거로써 책 전반에 소개한다.

■ '이기적 소비자' … 인간관의 문제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젠더,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가 건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불평등한 사회는 심리사회적 요인에 따라 폭력과 갈등을 조장하게 되는데, 하층민은 물론이고 기득권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갈등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때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대신 체력 유지와 관계된 부교감신경을 둔화시킨다. 또 성장 및 성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해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 이것이 만성화될 때 면역 체계는 파괴되고, 당사자는 질병에 노출된다.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윌킨슨 교수는 개코원숭이와 보노보의 예를 든다. 개코원숭이는 경쟁 상태에 놓일 때 우열을 가려 갈등구조를 맺지만, 보노보는 이 때 협력관계를 추구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 두 성격을 모두 가진 존재다.

하지만 현대의 공공정책은 인간을 '절대적 물질량'에 관심을 갖는 이기적인 소비자로만 가정하고 있어 문제다. 이 같은 체제에서 인간은 어린시절부터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장기화되면 건강을 잃는다.

한국 건강불평등학회 회원인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윌킨슨 교수의 논지에 대해 "물질적, 정치적 중요성을 간과한 채 사회적 관계 약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설명하려고 한 점이 아쉽다"면서도 "건강 불평등 문제를 쉽게 서술해, 이 문제에 대한 인식도가 낮은 우리나라 독자에게 큰 도움을 주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말했다.

■ 경제민주주의가 해답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에서도 건강 불평등 문제가 대두됐다. 이에 따라 건강한 삶을 표방하는 웰빙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오히려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역자인 김홍수영 런던정치경제대 연구원은 후기에서 "한 개인이 아무리 요가나 명상을 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중산층을 겨냥한 이런 상품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줘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윌킨슨 교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결국 누군가에게 열등한 지위가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으로 인류는 불평등의 원인이었던 희소성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 식의 사고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가는 우선 의료보험, 교육, 공공 교통과 같은 부문은 시장 메커니즘에서 분리시키고, 최저임금제나 사회보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을 착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는 최근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협력과 호혜에서 가치를 찾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 해답이다. 가령 기업에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하고 참여 관리와 이윤 분배를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홍수영 연구원은 "윌킨슨은 빈곤층에 대한 의료 서비스 확충을 사후적인 해결책으로 보았다"면서 "건강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이 문제를 자각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강신익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장

"우리는 통섭(統攝ㆍ학문 사이의 벽을 넘어선 새로운 통합학문)이 아니라 통섭(通涉ㆍ여러 학문이 두루 소통하는 것)한다는 마음으로 연구합니다."

강신익(52)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장의 말이다. 그는 자연의학, 사회의학(사회역학)을 넘어선 인문의학 연구를 표방하며 2년 전 이 연구소를 창설했다. 윌킨슨 교수가 의학을 사회학으로 풀려고 했다면, 강 소장은 여기에 인문학까지 더한 셈이다.

인문의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문학ㆍ사학ㆍ철학 등의 인문학에 전통 및 현대의학을 망라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 한다.

인문의학의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건강의 반대말을 질병이라 인식할 정도로, 건강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강 소장은 "건강은 근대 이후에 처음 생긴 말"이라며 "전통사회의 개념으로는 양생(養生), 섭생(攝生), 장생(長生)과 비슷한 '생물 종의 형태적ㆍ기능적 변수들의 통계학적 평균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따라서 "건강을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삶 혹은 몸 자체로 봐야 한다"며 "차라리 '건강은 없다'고 느끼라"고 권한다.

강 소장이 인문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때다. 보호자의 요구로 중환자를 퇴원시켰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가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일이다.

당시 치과의사였던 강 소장은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의철학을 공부했다. 그 뒤에도 국내 학계는 의약분업이나 황우석 사태 등으로 흉흉했고, 이 때마다 그는 '홍익인간 정신에 따른 인문의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6년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한국의철학회를 모태로 이 학문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연구소에는 철학, 경영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온 학자들이 대거 포진해 <인문의학_인문의 창으로 본 건강> 을 출간하는 등 저술에도 힘쓰고 있다.

"세상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성취감이나 보람 같은 가치가 있는데, 이것은 사회역학에서도 간과하는 부분"이라는 강 소장은 "이를 보완하는 인문의학을 준 학술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미 국내에선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가톨릭대 인문사회의학연구소 등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고, 영국의 인문의학 단체 'Medical humanities'와도 교류 중이다. 강 소장은 "곧 직장인의 24시간 생활을 다룬 <건강24시> (가제)라는 생태학 책을 발간하고, '나는 몸이다'라는 강좌를 열어 일반인에게도 다가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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