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6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9층 중환자실. 37일째 병상에 누운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서 이희호 여사는 남편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이 폐색전증으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난달 23일 이후 매일 이어오던 새벽 면회였다.
간밤에 혈압이 떨어지면서 김 전 대통령은 또 한번 위기를 넘겼다. 24시간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전날 밤 11시부터 혈압 상승제 투여량과 호흡기를 통한 산소 공급량을 늘린 끝에 이날 새벽 1시 겨우 정상 혈압을 회복했다.
전날 오후 2시쯤에도 심각한 혈압 저하가 있었다. 동교동계 등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병원을 모였다가 오후 6시쯤 회복 소식을 듣고서야 돌아갔을 만큼 위중한 상황이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오늘(17일)을 넘기지 못하실 거라는 연락을 받고 전갑길 광주 광산구청장 등도 급히 상경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폐색전증 발병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은 악화와 회복을 반복해왔지만 하룻새 두 번이나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 불길한 조짐이었다.
47년을 함께 해온 부부이자 평생의 동지를 어루만지며 '마지막 면회'가 되지 않길 빌었을 이 여사의 간구도 헛되이, 오전 7시 김 전 대통령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다시 위험 수위로 떨어졌다. 혈압 상승제와 고농도 산소로 생체 지수를 끌어올리는 비상 조치가 재개됐다. 의료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언질을 받은 가족과 측근들이 속속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정오 무렵 생명을 견인하던 팽팽한 줄이 툭 끊어졌다. 약물과 산소를 최대치로 공급해도 산소포화도는 더 이상 생명 유지선인 90 이상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치료가 중단됐다. 주치의인 정남식 교수는 "심폐소생술은 생명 회복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시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 임종을 위해 가족들이 입실했다. 이희호 여사, 세 아들 홍일 홍업 홍걸씨, 며느리들과 손자들이었다. 정치적 동지였던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과 안주섭 전 경호실장,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과 윤철구 비서관도 함께 했다. 이 여사가 "하나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저희에게 보내주세요"라고 간곡히 말했다.
측근들은 돌아가면서 "여사님을 잘 지켜드리겠다", "저희가 잘 알아서 (정치를) 하겠다"는 등 김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1시35분 심장 박동이 잦아들면서 심전도 그래프가 평평해졌다가 다시 굴곡을 그렸다. 의료진은 "서거 1, 2시간 전까지도 가족들과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굳은 삶의 의지를 전했다.
소생의 실낱 같은 희망도 잠시, 8분 뒤 85년 생애 내내 뜨겁게 뛰던 심장은 영원히 멎었다. 이희호 여사는 오열했다. 편안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손과 발엔 아내가 병상을 지키며 직접 뜨개질한 아이보리색 장갑과 덧신이 씌워져 있었다.
한편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이여사께서) 김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지 않으셨다고 한다"면서도 "병원 입원 며칠 전까지 일기를 쓰셨는데, 혹시 그 일기에 (유언이라고 볼만한) 얘기를 남겼는지 여사께서 챙겨보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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