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인데도 대학의 지방 캠퍼스 생활관은 늘 손님들로 복작인다. 800여 명이나 되는 교회의 신도들이 수련회를 왔다 떠나면 어린이 스포츠단이 놀러와 재잘거린다. 지난 몇 주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머물렀다 떠났다. 얼마 전 대학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강당 입구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이었다. 소싯적에 백일장 좀 나갔다고 하는 '선수'들이라면 이런 플래카드에 대한 감상도 남다르다.
학생 식당 밥맛에 묘한 맛이 있듯 백일장에도 백일장만의 묘한 분위기가 있다. 내 첫 백일장은 초등학교 시절 한 유산균 음료 회사가 주최한 백일장이었다. 문예반 선생님이 슬쩍 지나가면서 그 회사 이름도 한 마디 넣어줘라고 말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백일장 전날 속속 학생들이 도착했다. 자가용도 꼬리를 물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학생들은 낯선 곳을 휘둘러보며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날 밤 생활관 창문들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백일장에 입상하면 대학 입학 때 특례가 있는 모양이다. 그 전날 다른 곳에서 또다른 백일장이 있었다. '선수'들은 그곳에 참가했다 바로 이곳으로 건너왔을 것이다. 백일장 시제로는 어떤 것이 주어질까. 밤 늦도록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면서 나도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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