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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서 스러져간 '아리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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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서 스러져간 '아리아리랑'

입력
2009.08.1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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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한국인 남성이 긴급 입원했다. 인근 호텔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쓰러져 있던 것을 호텔 직원들이 후송한 것이다. 처음부터 의식이 없던 그는 결국 15일 새벽 1시 숨졌다.

유일한 신분증인 여권은 위조된 것이라 나이로비 주재 한국대사관은 환자 신원을 밝히는데 애를 먹었다. 경찰 주재관이 정보망을 가동한 끝에 겨우 단서를 잡아 국내에 사는 유일한 혈육인 조카에게 연락했으나 "숙부와는 40년 이상 연락이 끊긴 사이"라며 나서길 꺼렸다.

주재관은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다른 지인이 보내준 고인의 사진을 시신과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다. 가곡 '아리아리랑'의 작곡가 안정준씨(사진)였다. 향년 80세.

고인의 대표곡 '아리아리랑'은 전통민요 '아리랑'을 콜로라투라(고난도 기교ㆍ고음역을 요하는 양식)에 맞게 편곡한 가곡이다. 1995년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신작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수록해 유명세를 탔고, 조씨가 2000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거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시상식 축하 공연에서 불러 창작 가곡의 대표 반열에 올랐다.

안씨는 김현승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가을의 기도' 등을 발표하고 97년 남성 중창단 '프리모깐딴떼'를 창립하는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다 2000년 갑자기 중국으로 떠나면서 세인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이북 출신인 안씨는 젊은 시절 중동에서 의료기 사업으로 큰 돈을 버는 등 사업에 수완을 보였고, 음악 전공자가 아닌데도 작곡에 재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모깐딴떼 단원인 고성호 국민대 겸임교수는 "사업에서 번 돈으로 파리, 시드니 등지로 중창단 해외 공연을 주선하는 등 문화 사업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분이다. 얼마 전 통화할 때 '사업이 잘되고 있으니 내년엔 나이로비에서 공연하자'고도 하셨다"며 부고를 안타까워했다.

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인 진규영 영남대 교수는 "80년대 말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KBS라디오엔 신작 가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작곡가들을 위촉했는데 거기서 안씨를 만났다"며 "'가을의 기도' '님이 부르시면' 같은 안씨 가곡은 지금도 성악가들의 주요 공연 레퍼토리"라고 말했다.

안씨는 90년대 국내로 사업처를 옮겼다가 실패해 2000년 중국에 건너갔고, 2년 전부터는 케냐에 머물며 건설업 등에 손을 댄 것으로 전해졌다. 이혼한 부인과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어 안씨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으며 고혈압 당뇨 등 지병을 앓아왔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고성호 교수는 "장례는 가족들이 치를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창단에선 고인의 작품을 모아 무대에 올리는 등의 추모공연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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