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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보건소 '우리손주 육아교실'/ "내리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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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보건소 '우리손주 육아교실'/ "내리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입력
2009.08.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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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물 속에 담그고 살랑살랑 흔들면서 닦아주세요. 엎어서 등을 닦을 때는 마주 보며 '까꿍' 하세요."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서대문보건소. 알록달록 무늬 옷을 입은 50∼60대 여성들이 방을 꽉 메웠다. 흡사 단체여행을 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사실은 예비 할머니들로 곧 태어날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우리손주 육아교실'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엄마 젖을 언제까지 줘야 할까요"라는 강사의 질문에 "6개월" "1년" "8개월"이라며 서로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교실 풍경이 따로 없다. 강사가 "애기가 싫다고 할 때까지 주면 됩니다"라고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한바탕 웃는다. 강사가 질문 시간을 주자 "예전엔 손수건으로 이를 닦아주기도 했는데 괜찮을까요?" "목욕시킬 때 적당한 물 온도는 어떻게 되나요?" "산모가 스트레스 받으면 어떡하나요?" 등 궁금증이 쏟아진다.

일부 할머니들은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 강의 내용과 문답을 꼼꼼히 메모했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오래 앉아 허리가 아플 법도 했지만 이들의 눈빛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애 키우는데 이력이 났을 만도 한데 강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이다.

"예전에 애 키워 본 경험이 있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한 할머니는 "너무 오래됐어. 기억이 안 나"라며 웃었다. 재학습을 넘어 새로운 육아법을 배우러 온 할머니도 있었다. "우리 며느리 기대치가 높아. 나 자랄 때랑 애 키우는 방법도 도구도 많이 다르더라고."

목욕시키는 법은 신생아 모형을 갖고 실습위주로 진행됐다. 테이블에 놓인 아기 모형을 들고 강사가 시키는 순서대로 아기를 씻기기 시작했다. "쑥스럽네", "손에 안 익네"라며 할머니들도 어색한 듯 웃었다.

아들 딸 장성하고 편히 쉴 만도 한데 이들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글쎄요, 희생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운명인 것 같아요." "며느리가 직장 다니거든요." "아들한테 물려줄 것도 없는데 손주라도 잘 키워주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요." 대답은 각각이지만 내리사랑이 듬뿍 묻어있는 것만큼은 공통이었다.

서대문구 보건소는 이날 예비 할머니 30여명을 대상으로 신생아 목욕시키기, 응급상황 대처법,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 등 실습위주 교육을 2시간 동안 실시했다. 수업을 진행한 여준숙(50) 강사는 "맞벌이 부부가 증가해 자녀양육을 예비 할머니가 도맡는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해 강의를 마련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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