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3일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승용차가 출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렌지 색 모자를 쓴 직원이 달려온다. 여성 고객이 내리자 직원은 자동차 열쇠를 받아 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 병원은 올 초부터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서나 있을 법한 '발레주차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주차 때문에 시간 낭비할 필요 없고 나갈 때에도 단말기에 진료권만 대면 곧바로 차를 찾을 수 있어 어린이나 노인 환자를 동반한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2. 8일 서울 종로 보신각 옆 '종로 예본 안과' 4층에서는 시 낭송회가 열렸다. '접시 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시, 사람 그리고 따뜻한 주제'의 강연과 함께 시 낭송회를 진행했다. 특히 이 곳은 '살롱 드 예본' 이라는 카페로 꾸며져 있다. 병원 관계자는"병원 한 층을 카페로 바꾸자 괜한 짓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환자들로부터 '편안하고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문화와 진료를 결합한 서비스를 내세운 이 병원은 지난해 말 지식경제부로부터 안과 최초로 '서비스품질 우수기업 인증'을 받았다.
전 세계를 휩쓴 불황의 폭풍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들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환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는 고사하기 십상이다. 진료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물론 독특한 서비스와 자기만의 색깔이 묻어난 경영 기법으로 위기 탈출에 성공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올해 초 23년 동안 쓰던 이름(옛 영동세브란스병원)을 바꾸는 등 환골탈태를 단행했다. 특히 올 봄 확장ㆍ개원(병상 수 기존 800개→2,000여 개)한 서울성모병원(옛 강남성모병원)이 큰 자극제가 됐다.
병원 관계자는 "서울아산병원(병상 수 2,700여 개), 삼성서울병원(1,900여 개)에게 환자를 많이 빼앗긴데다 서울성모병원까지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서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 의식이 강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소프트웨어의 혁신'이다. 하드웨어(규모)에서는 빅3를 상대하기 버거워 진료와 서비스를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국내 병원으로는 처음 무료 발레 주차 서비스를 도입하고, 신용 카드를 한 번 등록하면 병원에 올 때마다 번번이 결제할 필요 없이 나중에 결제가 되는 호텔식 '일괄카드수납후불제(Open Card System)'도 도입했다. 휴일은 물론 야간에도 진료 예약에서 취소, 변경이 가능한 24시간 콜 센터 운영 도입도 국내 처음이다. 각 진료과 별로 전문 상담 간호사를 둬 '불통' 없이 곧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 편의를 위해 규모가 적은 6인실 일부를 5인실ㆍ4인실로 바꿔 병상 수를 60개 가까이 줄였지만 1년 전 보다 외래환자는 17.2%, 입원환자는 9.0%가 증가(2009년 6월 기준)했다.
해외 환자 유치로 돌파구를 찾는 경우도 있다. 목소리 치료 및 성형 전문인 예송이비인후과는 2007년부터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열고 구글 등 해외 포털 사이트 광고도 열심이다. 병원에는 3개 국어가 가능한 통역사가 해외에서 오는 전화, 인터넷 문의에 즉시 답하고 있다.
주사를 이용한 난치성 성대질환 치료술(경피적성대성형술)을 개발, 2003년 미국 이비인후과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던 김형태 원장은 "목소리 치료는 특별한 분야이고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선진국형 질환이라 국내 환자에만 기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입 소문을 타면서 지난해만 미국 등에서 외국 환자 26명이 찾아왔는데 특히 성 전환 수술 후 여성의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이들이 꾸준히 입국하고 있다.
관절 전문인 힘찬 병원은 '21세기 형 왕진(往診)'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관절수술 후에는 3,4개월 안에 재활 훈련을 마쳐야 함에도 농어촌 환자, 혼자 사는 노인의 경우 혼자서 이를 진행하기 쉽지 않다. 병원 측은 2006년부터 6개의 방문간호서비스 전담 팀을 꾸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힘든 발품팔이지만 환자를 끝까지 책임 진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노인 환자를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영리 법인화, 외부 자본 진입 허용 등 의료 산업에 회오리가 불어 닥치면 경쟁은 더 치열해 질 것"이라며 "무조건 규모만 키울 게 아니라 자기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확보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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