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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타워크레인 기사'의 세계… 동승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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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타워크레인 기사'의 세계… 동승 취재기

입력
2009.08.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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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형 공장 건설 현장. 거대한 로봇을 연상케 하는 25층 높이(지상 90m)의 타워크레인이 두 팔을 허공에 뻗은 채 떡 버티고 서 있다. 그 아래에서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올려다 보았다. T자 모양 크레인의 가로, 세로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조종실이 푸른 하늘 한 가운데 찍힌 작은 점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가벼운 현기증이 몰려왔다.

언제부턴가 역동성 혹은 개발의 상징으로 도시 풍경의 한 자리를 차지한 타워크레인. 최근엔 충정로 재건축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경의선 철로를 덮치는 등 7월에만 3건의 대형 사고가 발생해 6명이 숨지고 10명이 크게 다치며 도시의 '무법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지상 수십m 높이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조종간을 잡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삶은 어떨까.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선 '타워크레인 체험'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건물의 철골 구조물을 타고 오르던 리프트는 17층에 멈췄다. 조종실은 여기서 30m 더 올라야 한다. "이제부터 안전모와 면장갑만 착용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사 이종연(31)씨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귓전을 울렸다.

건물에서 타워크레인까지 거리는 약 2.5m. 그 사이에 놓인 폭 40cm 가량의 철제빔을 건너가야 하는데, 당최 발이 떨어지지 않아 이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2시간을 보냈다. 대여섯 개비의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보다 못한 이씨가 "2년 전 타워크레인 노조 농성 때 여기자도 올라갔었다"며 손을 잡아 끌었다. 허리 높이에 매인 줄을 잡고 "절대 밑을 보지 말라"는 말을 곱씹으며 발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며 겨우 철제빔을 건넜다.

가운데가 텅 빈 크레인의 세로축 구조물(mast) 안에 설치된 폭 60cm 가량의 철제 사다리를 오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긴장 탓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몸 전체가 뻐근하고, 강풍에 크레인이 흔들리는 느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땀이 시야를 가려 발을 헛디딜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뒤따르던 이씨는 "떨어져도 내가 밑에 깔린다"고 농을 건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27분을 올라 조종실 아래로 난 문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작업 중이던 기사 조재원(38)씨가 반갑게 맞았다. 크레인 제어장치와 의자, 에어컨이 놓인 3.3㎡ 남짓한 조종실 안은 3명이 들어가니 꽉 찼다. 조종실 안이나 그 위에 놓인 72m 길이의 가로축 구조물(jib)에선 흔들림이 심해 취재 내내 한 손은 무언가 잡고 있어야 했다.

조씨는 "여기처럼 리프트가 설치된 곳은 드물다"면서 "우린 생명수당도 없이 하루에도 4~6번씩 1층부터 조종실까지 맨손으로 오르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비용이 문제"라고 했다. 1, 2년 수명의 크레인에 기사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250만~300만원 들여 설치하는 건설업체는 거의 없다는 것. 그는 "세전 월급 239만원을 받는 기사들이 스스로 안전설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비가 내리거나 눈이 와 사다리가 살짝 얼었을 때 사고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전국건설노조 타워분과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타워크레인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만 103명에 달한다.

전국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4,000여명으로, 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더욱이 최근 건설경기가 위축되면서 1년에 약 2,700개의 크레인만 세워져 30% 가량은 실직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은 더욱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기사들은 "건설업체가 요구하는데 눈이나 비가 온다고 크레인에 오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작업 환경을 가려가면서 일하는 기사라는 소문이 업계에 돌면 일자리를 잡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사들은 가장 큰 고충으로 식사와 생리적 현상 해결을 꼽는다. 타워크레인 기사 18년 차인 조씨는 "초창기에 점심 한 끼 먹겠다고 내려오느니 대충 때우자 싶어 빵을 주로 먹었더니 위장병이 났다"며 "요즘은 건강을 위해 힘들어도 꼬박꼬박 내려와서 먹는다"고 말했다. "화장실 문제는, 준비해둔 용기를 사용하거나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죠. 기사들 중엔 제때 화장실에 못 가 요로결석이나 치질에 걸린 사람이 정말 많아요."

작업시간 내내 홀로 지내는 외로움도 만만치 않다. 조씨는 "종일 이야기 상대가 무전기밖에 없다고 생각해보라"며 "전생에 죄가 많아 한 평생 이 좁은 공간에 혼자 앉아 하늘만 바라보는 직업을 갖게 됐다는 동료의 말이 생각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5시40분, 크레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에 비해 쉽게 느껴졌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먼저 내려가던 이씨는 "여기자가 올랐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여러 차례 타워크레인에 대한 취재가 있었지만 직접 끝까지 올라간 것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순간 온 몸을 감싸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몸을 흔들던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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