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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비 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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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비 갠 뒤

입력
2009.08.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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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밭에 허수아비가 서 있다. 손바닥만한 밭에 부부가 들어가 엉덩이걸음으로 뭉그적대면서 김을 맨다. 허수아비만 보면 어릴 적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피해갈 수가 없다. '허수아비'의 아들 이름은? 물론 '허수'이다. 좁다란 길을 뒤따라오는 아이에게 들려주었더니 역시나다. "엄마, 썰렁해!" 허수아비가 뭘 입고 있나. 지금까지 봐온 허수아비 중 손꼽을 만큼 입성이 추레하다. 꽃무늬 나일론 블라우스에 지금도 그런 모자가 있나 싶을 법한 새마을 모자를 썼다.

모자 앞에 노란 색실로 농촌의 한 단체명이 멋없이 박힌 그런 모자이다. 그나마 바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느 핸가 자동차를 몰고 어느 평야를 지나다가 멋스러운 허수아비를 보았다. 트렌치 코트에 파나마 모자를 썼다. 지나치면서 보니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참새들로부터 곡식을 지키고 섰기에는 정말 아까운 인물이었다. 깊은 사색에 잠겨 모자 위에 참새가 앉은 것도 깨닫지 못했다.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 움직이는 허수아비도 있다고 들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한번씩 부르르 떨면서 참새들을 놀려준다는 것이다. 암만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허수아비는 전경린 선배의 소설 속에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귀향길에 마주친 허수아비. 사랑과 수모와 절망의 시기를 함께 보낸 자신의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입고 서 있던 허수아비.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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