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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두 김씨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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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두 김씨의 화해

입력
2009.08.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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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과 모여 정다운 얘기하는 것을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세상 걱정을 없애버리네(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읊은 구절이다. 자기 삶을 개성 있게 살았던 도연명이 관직을 그만두고 권력도 구차하다면서 소박한 삶이 인생 최고의 열락(悅樂)이라고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다.

'두부 오이 생강 채소 많이 삶아 차리고, 신랑각시 아들딸 손자 많이 모여 앉았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모함 속에 회한의 삶을 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고종(考終)하던 해에 청나라 오동리(吳東里)의 시에서 따와 예서(隸書) 대련(對聯)으로 남긴 불후의 명작 문구다.

국민 옭아 맨 지역주의

그는 이 문구의 이치를 떵떵거리며 권력과 부를 휘두르는 자도 감히 알기 어려운 인생 제일의 즐거움이라고 설명하는 협서(脇書)를 덧붙였다. 헌종 재위 시절의 세도정치 때 안동 김씨 세력의 모함을 받고 평생 귀양을 다녀야 했던 국가 동량의 천재 김정희가 권력의 하이에나들에게 용서와 아량으로 권력의 무상함과 인생의 이치를 일러준 글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래 척지고 살았던 병석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병하고는 이를 스스로 "화해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정치 보스들이 화해하자 그 추종자들도 이제 화해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부디 그렇게 하기를 고대한다.

권력이란 나라 일을 하는데 필요하여 준 것이지, 권세와 부를 쌓고 사람들에게 겁주고 휘두르라고 준 것이 아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천하가 자기 것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물러나고 나면 이슬과 번개처럼 한 순간에 없어지는 것이다. 이치가 이럴진대, 진정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였더라면 서로 척지거나 원수 질 일도 없는 것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 큰 이름 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정치에 이용한 과오 역시 크다. 국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런 선전선동에 끌려 다니며 아무 이유 없이 서로 적을 만들고 저주하였다.

이 고질적인 지역주의는 아직도 나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정당정치가 파행을 거듭하는 것, 인사의 난맥상을 가져오는 것, 지역간 불균형과 갈등, 국민 분열 등도 가장 큰 원인은 지역주의다. 이 문제는 이를 이용한 사람들이 먼저 국민 앞에 과오를 고백하고, 이를 극복하자고 나서야 그간 받은 국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다. 민주화 업적도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인생이든 권력이든 그 본질이 이러하다면, 이제 나라의 덕을 본 사람들이 앞장서서 진정 한 화해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떨까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정치적 갈등과 싸움에 의하여 조장되고 심화된 것이다.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 상대를 공격하고, 거짓말로 모함하고, 정치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감정을 동원하여 서로 적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릇된 정치 혁파해야

화해는 진실을 고백하고 자기 것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한다. 서로 그 동안 잘못한 일들에 대하여 국민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진정으로 화합을 실천하여 대한민국이 잘 되도록 하는 일에 힘을 합쳐야 한다. 이미 대통령을 해본 이들과 권세를 누린 사람들이 인생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진대, 이제 정치권은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의존한 정당정치와 선거를 과감히 혁파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현재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 순간에도 권력을 뺏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악쓰는 사람들은 권력의 무상함과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권력은 국민이 준 것이다. 권좌는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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