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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저주받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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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저주받은 아이들'

입력
2009.08.1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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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김효순 지음/서해문집 발행ㆍ332쪽ㆍ1만2,900원

저주받은 아이들/장 폴 피카페르 등 지음ㆍ강주헌 등 옮김/중앙북스 발행ㆍ396쪽ㆍ2만원

전쟁의 진짜 비극은 망각과 침묵 너머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다. 히틀러, 스탈린, 처칠, 히로히토 같은 이름으로 2차대전은 기억된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을 몸으로 받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 잊혀졌거나 아직 은폐돼 있다.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그러나 여전히 진행 중인 2차대전의 아픔을 증언하는 책 두 권이 출간됐다.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는 시베리아 억류자의 아픈 기억을 기록한 책이다. 시베리아 억류자란 일제 말 황군(皇軍)으로 끌려갔다가 만주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말한다. 한겨레 편집인을 지낸 저자 김효순씨는 생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엮어 60여년 전의 가혹한 역사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패전이 눈앞에 다가왔던 1944년 초, 일본은 조선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간단한 군사훈련을 거쳐 각 전선으로 보내졌는데, 만주의 관동군에 배치된 이 책의 주인공들은 변변한 전투도 치러보기 전에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일본 군복을 입고 있던 이들에게 8ㆍ15는 해방이 아니라 패전으로 닥쳐왔다. 총알받이들은 전쟁포로가 됐다.

수 년 간, 이들은 시베리아 동토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 겨울엔 땅을 팔 수 없기에 가을에 주검을 묻을 구덩이를 미리 파야 했다. 생존자들은 "주검이 너무 많아 처리하기 곤란하면 얼어붙은 강 표면이 녹기 시작할 때부터 무더기로 흘려보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1948년 말이 돼서야 소련은 억류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했다. 일부는 남한이 고향이었는데, 이들은 몇몇씩 무리를 지어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고향을 찾은 이들을 맞은 것은 공안기관의 매타작이었다. 박정의(85)씨는 "소련군에 항복할 때도 손 안 들어봤고 이북에서도 손 들지 않았는데 내 고향 땅에 와서 손 들라고 하니 이게 무슨 꼴인가. 결국 손 들었지"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구한 사연이 연이어 등장하지만,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현대사의 신파성이 아니다. "식민 통치의 피해자가 왜 종전 후에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했을까, 이들의 억울한 사연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것이 이 책이 시종 놓지 않고 있는 질문이다. 러일전쟁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를 되짚으며, 이 책은 시대의 희생자들을 망각 너머로 몰아낸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저주 받은 아이들> 은 전쟁 뒤에 남는 '달갑지 않은 탄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2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유럽 각국에서 독일군을 아버지로 둔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욕 속에 놓여 있었다. 언론인, 역사학자인 저자들은 '독일놈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자란 5명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아물지 않고 있는 2차대전의 상처를 보여준다.

"전쟁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은 "끔찍한 것은 내가 사랑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번번이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백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침묵 속에 가두고 살아야만 했을 50여년의 시간이다. 세상의 가장 큰 폭력이 외면과 편견임을, 그리고 전쟁이 그 폭력을 일상으로 배태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목격할 수 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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