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에 있는 사진 한 장만 봐도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게 뭔지 알 수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야 의원들의 방에 걸린 사진과 그림들을 보면 정치가 보인다. 의원들은 조그마한 물건 하나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다.
걸려 있는 사진의 주인공을 보면 소속 정파와 계파를 가늠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은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실의 단골 메뉴다. 정몽준 최고위원의 방에도 이 대통령과 부부 동반으로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유정현 의원실 책장엔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진열돼 있다. 반대로 친박계 구상찬 의원실에 가면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을 세 장이나 볼 수 있다. 친박계 한선교 의원실엔 박 전 대표가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 걸려 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실의 사진 속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옆의 '내 마음 속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사진 속에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웃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의원 등 옛 동교동계 출신 의원 방을 찾으면 DJ와 함께 찍은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옛 상도동계 출신인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실에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뿌리를 강조하는 사진들도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방엔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정몽준 최고위원의 방엔 고 정주영 회장을 '사자'로 표현한 캐리커쳐가 있다. 친박연대 김을동 의원은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과 아버지 김두한, 아들인 탤런트 송일국씨 등 3대에 걸친 '세 남자'의 사진을 태극기와 함께 걸어 놓았다.
글을 통해 구체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요즘 입각설 등으로 고심 중인 김무성 의원은 얼마 전부터 '인고(忍苦)'라는 두 글자를 책장에 붙여 두었다. 그는 "조만간 떼겠다"고 해 여운을 남겼다.
서민 정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실엔 '상하동락(上下同樂ㆍ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이 즐겁게 살자)'이라고 쓰인 표구가 걸려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극진히 섬긴다'는 뜻의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는 최근 몸을 낮추고 있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실에 걸려 있는 글귀다. 3군 사령관 출신인 민주당 서종표 의원실 출입구엔 '선진국방 튼튼한 안보'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지역구 사랑'을 듬뿍 담은 사진도 많다. 의원회관에 드나드는 유권자들을 의식한 듯하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 유재중 의원(부산 수영 광안대교) 이범관 의원(경기 여주ㆍ이천 전도) 민주당 김우남 의원(제주 한라산 백록담) 등이다. 광주 표밭을 갈고 있는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실엔 호남 지도와 무등산 사진이 걸려 있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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