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작품 중 하나는 31세의 스웨덴 작가 나탈리 뒤르버그의 것이었다. 검은 방 속에 기괴한 느낌의 인공 정원이 꾸며진 가운데 상영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성과 관련된 온갖 엽기적 상상력을 담고 있었다. 그의 방은 늘 관람객으로 북적였고, 베니스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그에게 젊은 작가에게 주는 은사자상을 수여했다. 뒤르버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작품의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그 속에 성 문제, 육체적 폭력, 종교 등 진지한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뒤르버그의 전시 ‘턴 인투 미’(Turn into Me)가 15일 서울에서 개막했다.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같은 제목의 전시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패션브랜드 프라다가 경희궁 앞마당에서 진행 중인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세 번째 프로그램이다. 건축가 렘 쿨하스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한 회전 구조물은 방향을 바꿔가며 패션쇼와 영화제를 열었고, 이번에는 십자가 형태가 바닥으로 오도록 회전해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고궁 사이에 놓인 21m 높이의 거대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치 동굴로 들어온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어두운 전시장 벽면은 흰색 천으로 장식돼 있고, 뒤르버그는 벽면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목이 잘린 인간의 뼈와 튀어나온 눈알 등 강렬한 느낌의 드로잉이다.
내부에는 점토로 만든 커다란 감자와 고인돌이 설치돼있고, 그 사이사이에서 점토 인형이 등장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4편이 상영되고 있다. 스웨덴 작곡가 한스 버그가 만든 전자 음악과 함께 흐르는 애니메이션 속 장면들은 보기 불편할 만큼 잔혹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쾌감을 준다.
털옷을 입은 여자 사냥꾼은 작살을 던져 해마를 잡은 뒤 칼로 해마의 몸을 쓱쓱 가른다. 해마의 몸에서는 피가 튄다. 사냥꾼은 옷을 벗은 뒤 해마 속으로 들어가 바다 속으로 유유히 헤엄쳐간다. 전시 제목과 같은 ‘턴 인투 미’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숲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여자의 시체에서 벌레들이 기어나운다. 벌레들이 지나간 뒤 썩어버린 시체의 갈비뼈와 자궁 속으로 두 마리의 동물이 들어가면 그 뼈는 이상한 괴물이 되어 숲 속으로 사라진다. ‘고래’라는 작품에서는 고래 위에 올라탄 두 남녀가 고래의 껍질을 벗기고 고래의 몸 속으로 빠져버린다.
여인의 나체와 뼈, 그리고 무엇인가가 몸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등은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또는 인종 간 지배 관습에 얽매인 현대사회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충격적인 내용의 작품과 달리 수줍은 목소리를 가진 금발의 작가 뒤르버그는 “내 자신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나 궁금해하지 않느냐”면서 “사람들을 내면의 세계와 무의식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의 주된 관심사는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요약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홈페이지(www.pradatransformer.co.kr)로 예약하면 무료로 볼 수 있는데 한번에 25명씩으로 관람 인원이 제한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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