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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로커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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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로커비의 진실

입력
2009.08.1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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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추락한 미국 여객기 폭파테러가 다시 뉴스가 됐다. 이번에는 2003년 테러 주범으로 스코틀랜드 법정에서 종신형을 받은 리비아 정보요원을 조기 석방하려는 영국의 결정이 논란을 불렀다. 탑승객과 주민 등 270명이 희생된 로커비 테러는 당시 리비아 지도자 가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부르며 몰아붙인 미ㆍ영 등 서방과 리비아의 오랜 적대와 화해를 상징한 사건이다. 또 20년에 걸친 우여곡절에는 숱한 음모론과 미스터리가 얽혀 늘 논란거리가 된다.

■ 런던 발 뉴욕 행 팬암(Pan Am) 여객기를 노린 테러는 당초 이란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이란은 그 해 여름, 미 해군이 페르시아 만에서 이란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한 것에 보복했을 개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수사 상황을 3년이나 비밀에 붙여 갖가지 의혹을 낳았다.

가장 유력한 추리는 91년 걸프전에 이른 이라크와의 대치상황에서 이란을 회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두 나라는 걸프전이 끝난 91년 11월, 리비아의 몰타 주재 정보요원 2명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이 시한폭탄을 숨긴 카세트레코더를 가방에 넣어 몰타에서 뉴욕으로 탁송, 런던에서 팬암기에 실리도록 했다는 추론이었다.

■증거는 사건 6개월 뒤 추락 현장에서 발견했다는 손톱만한 시한장치 파편과 어린이 셔츠 조각이었다. 초라한 물증과 범인을 연결짓는 고리는 레코더를 감싼 셔츠를 리비아 요원에게 팔았다는 몰타 상인의 증언뿐이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고려 때문에 가장 만만한 리비아를 제물로 삼았다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다.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미 시사주간지가 미 정보기관의 공작설을 추적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안보리 제재 등으로 테러국가를 응징하는 본보기로 삼았다.

■경제봉쇄에 목이 졸린 리비아는 결국 99년 '범인' 알 메그라히를 스코틀랜드 법정에 넘기고 희생자 유족에 1,000만 달러씩 배상하기로 타협했다. 대량살상무기 계획도 포기했다. 대가는 봉쇄 해제와 서구와의 관계 정상화다. 그 뒤에도 증거와 증인이 조작됐다는 반론이 이어졌고, 스코틀랜드 형사재심위원회는 올해 초 재심에 착수했다. 이런 때 영국은 알 메그라히가 말기 전립선 암으로 죽음이 임박했다며 석방과 송환을 결정했다. 유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석유 이권을 탐냈다는 풀이다. 로커비의 진실은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국제정치 게임의 이면에 관한 좋은 연구 대상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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