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에 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이라는 초특급 이벤트가 한반도에서 펼쳐졌다. 클린턴은 수감 중이던 미국 여기자를 데리고 귀국했고 현 회장도 개성공단 억류 직원을 무사히 귀환 시켰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대결과 제재 국면의 한반도가 대화와 협상의 분위기로 전환되는 듯한 모습이다.
경협 활성화 위한 정치적 계기
현 회장의 평양 방문 내용이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방북은 분명 성과를 거두었다. 첨예한 쟁점이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문제가 석방으로 일단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적지 않다. 남북 당국의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유씨 문제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정부는 유씨 문제를 당국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걸면서 대북 압박의 명분으로 사용했다. 핵문제와 관련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도 여기자 문제를 인도적 사안으로 분리해서 꾸준히 물밑 조율을 지속했던 미국과는 분명 다른 접근법이었다. 결국 유씨 문제는 현대아산이 대북 접촉을 통해 석방 노력을 기울였고, 현 회장 방북을 계기로 석방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현 회장 방북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남북 경협 사업이 다시 활성화 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분명 긍정적이다. 경협 사업의 민간주체가 북에 올라가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한 것만으로도 일단은 청신호이다. 물론 현 회장이 이명박 정부의 구체적인 대북 메시지를 가져갔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났다는 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확실시된다는 점으로 보면 남북 당국의 의사소통은 아니더라도 경협 사업 전반에 대해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처럼 조성된 한반도 해빙 분위기는 후속작업 없이는 불안정한 첫 걸음에 불과하다. 유씨 석방이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려면 이제는 민간이 아니라 남북 당국의 전향적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우선 북한은 유씨 석방을 넘어 지난 해 12ㆍ1 조치의 군사분계선 통행제한을 해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성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살리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역시 지난 해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결정한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유씨가 석방되는 과정에서 정부는 아무런 사과도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유씨 석방에 대북 시혜를 베푼 게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북의 유씨 석방 조치에 상응해서 이제 정부도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번에 중요한 역할을 한 현대아산의 가장 절박한 희망 사항이고 동시에 북이 내심 원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을 하루빨리 다시 열어야 한다.
정부가 1년 전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걸었던 사과와 재발방지, 현장조사는 유씨 석방과 현 회장 방북이라는 지금의 상황에서 되풀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북은 명승지개발총국 명의로 유감표명을 했고 현장조사 요구는 현실적 여건으로 우리 정부도 한발 물러선 상태다. 재발 방지는 이제 당국간 대화를 복원함으로써 풀어가야 할 문제다.
금강산관광 우리 먼저 재개를
금강산 관광은 1998년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시작하는 상징이었고 동시에 2008년 남북관계 중단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이제라도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조건 없이 재개함으로써 곡절의 남북관계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유씨 석방을 강경한 대북정책이 성공한 결과물로 간주하거나, 제재 국면에서 현금지원의 금강산 관광 허용은 시기상조라고 여길 것은 아니다. 모처럼 열린 기회의 창이 쉽게 닫히게 해서는 안 된다.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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