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왈종씨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해학적인 춘화를 자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녀의 사랑이 세상의 근원”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그가 그린 춘화도는 화랑에 걸리지조차 못했다.
1988년 2월 강남의 신생 화랑이던 청작화랑에서 운보 김기창이 선정한 한국화가 15인의 작품을 모은 ‘15인 두방전’이 열렸을 때 그가 낸 춘화도 3점은 전시장 벽에서 떼내져야 했다. 전시 첫날 전시장을 찾은 운보가 그 그림들을 보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내리라”고 말해 화랑 측이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랐던 것. 예술적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당시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때 문제가 됐던 춘화도들이 18일부터 청작화랑에서 열리는 ‘춘정(春情)과 순정(純情) 사이’전을 통해 다시 전시장에 걸린다. 21년간 이씨의 춘화도를 소장하고 있던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최근 우연히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가 다시 전시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전시회를 준비하게 됐다”면서 “성과 사랑이라는 테마가 갖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의 계기가 된 이왈종씨의 그림은 물론, 15명의 작가에게 춘화도와 누드화 제작을 요청해 40여점을 모았다. 때로는 도발적으로, 때로는 은근하게 표현된 사랑의 표현들이 흥미롭다.
21년 전 ‘15인 두방전’ 참여작가 중 한 명인 한국화가 오용길씨도 작품을 내놨다. 오씨는 그간 산수화만을 그려왔는데, 이번 전시 취지에 공감해 처음으로 누드화를 그렸다. 화려하게 핀 봄꽃 아래 말과 함께 한 여인의 모습이다.
‘보리밭 화가’ 이숙자씨는 보리밭 속에 관능적인 여체를 앉혔고, 추상화가 이두식씨는 과감한 생략과 터치로 에로티시즘을 표현했다. 전준엽씨는 해지는 노을과 바위섬으로 성적 상징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이일호, 김일용, 신일수씨 등 조각가들도 인체를 표현한 작품을 내놨다. 전시 시작 전부터 남성 관객들의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전시 특성상 미성년자의 관람은 제한되며, 혼잡을 피하기 위해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데 화랑 측은 장애인 잡지에 모두 기부할 예정이다. 9월 11일까지.(02)549-3112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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