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한지 14일로 104일째를 맞았다. 이날 현재 공식 환자 수는 1,970명으로 2,000명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사망자는 물론 중증환자도 한 명 없다. 또 신종플루에 걸려도 수일 내 완치되고 있어 겉으로만 봐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태풍 직전의 고요함일 뿐이며, 내달 이후 신종플루 폭풍이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온이 내려가 바이러스 증식이 쉬워지는 데다, 해외 영어연수를 떠난 학생들이 대거 학교로 복귀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서운 속도로 바이러스가 퍼질 경우 노인과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사망자도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겉으론 잠잠
4만6,000여명이 감염돼 436명이 사망한 미국 등에 비하면 한국의 신종플루 성적표는 양호하다.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알 수 없는 '지역사회 감염'이 초기부터 엄습했던 북미와 달리 한국은 5월2일 첫 환자 발생이후 7월10일 첫 지역사회 감염 환자가 나오기까지 모든 환자에 대한 감염원 추적이 가능했다.
격리만으로 바이러스가 더 퍼지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7월 중순이후 학교와 군부대 등을 통해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됐지만, 한 명의 환자가 폐렴에 걸렸다 곧 완치된 것 말고는 중증환자도 없었다.
이는 공항만 봉쇄하면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는 소규모 국가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덕분이다.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될 무렵에는 여름으로 진입하는 계절적인 운도 따랐다. 특히 방학은 사실상의 '휴교 조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의료혜택이 취약한 나라에서 빈민가와 노인 등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많이 나왔지만 한국은 외국에 다녀오는 등의 젊은 환자들이 많아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할 개연성이 적었다"고 말했다.
■ 실상은 태풍 전야
그러나 내달 이후면 계절적 운은 사라지고, '소규모 국가'라는 장점은 높은 인구밀도로 급속한 전파가 우려되는 '악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학연수를 마친 학생들이 다시 집단생활에 합류할 경우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개학 이후 신종플루가 학교에 대유행할 가능성이 크고 감염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노인 등 고위험군에 전파시킨다면 중증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학교의 집단 감염은 외부 출입이 제한된 군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김 교수는 "백신이 보급되는 11월까지가 고비"라고 진단했다.
■ 대책 서둘러야
보건당국은 11월부터 초중고생, 군인 등 1,300만 명에 대해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백신 임상시험 결과는 9월말께 나올 예정이지만, 대략 접종자의 50~80%에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백신보급 때까지 신종플루를 막는 일이다. 전병율 센터장은 "학교와 군부대 대응이 최우선시 될 것"이라며 "군부대는 일일 발열검사와 발열증상이 있는 면회자의 면회금지를 실시하고 있고 학교는 보건교사와 관할 보건소를 통해 일일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역을 통한 차단'이 이미 무너진 상태여서 보건당국의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한계다. 김 교수는 "발발 초기 보건당국의 역할이 90%였다면 지금부터는 개인과 민간의료기관의 역할이 90%"라며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민간 병원들의 적절한 치료와 신속한 당국 신고 등의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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