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13년간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법적 논쟁이 사실상 모두 마무리된 까닭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차명재산에서 세금 등을 납부한 뒤 남은 돈은 유익한 일에 쓰겠다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약속 정도이다.
14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사건 파기 환송심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그 동안 삼성의 족쇄가 돼 왔던 법적인 공방이 모두 일단락된 데 있다. 5월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데 이어 이날 삼성SDS BW 저가 발행까지, 종지부가 찍히면서 삼성과 관련된 더 이상의 법적 논쟁은 무의미하게 됐다. 삼성으로서는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특히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최근 삼성 계열사의 전반적인 실적 호전 등과 맞물릴 경우 삼성은 또 한번 도약하는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분기 32조5,100억원(연결기준)의 매출과 2조5,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낸 것도 놀랄 만한 성적이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이 삼성이 '제3의 창업'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전무가 그룹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삼성은 "아직은 아니다"는 반응이다. 당분간은 계열사별 독자 경영과 사장단협의회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병행될 것이란 얘기다.
한편 법적인 공방이 마무리되면서 후속 조치들도 관심이다. 먼저 회사 손해액과 이 전 회장이 내야 할 벌금액(1,100억원)이 확정된 만큼 지난해 4월 삼성경영 쇄신안 발표 당시 나온 '유익한 일'의 구체적 내용이 가시화할 지 주목된다. 당시 이 회장은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에 대해 실명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은 유익한 일에 쓰는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이 전 회장이 지난해 7월 1심 판결을 앞두고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에 공소장에 적시된 피해액 970억원과 1,540억원을 각각 지급한 것도 어떻게 처리될 지 주목된다. 삼성에버랜드는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만큼 970억원을 다시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SDS도 이날 회사 손해액이 227억원으로 특정된 만큼 나머지 1,313억원을 다시 반환해야 하는 처지이다. 돌려주지 않을 때는 증여가 되는 문제도 생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당시 회사의 손해 발생 여부를 떠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면서 지급하는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 전 회장이 이를 다시 받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일각에선 일단 세금과 벌금 등을 낸 뒤 남은 돈을 재원으로 별도의 재단을 만드는 안도 예상하고 있다. '차명재산에서 세금과 벌금 등을 납부하고 남은 돈'의 규모는 아직 특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특검이 삼성의 차명 재산이 4조5,0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한 점을 감안하면 세금과 벌금 등을 빼더라도 그 규모가 막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 관계자는 "유익한 일의 구체적 내용은 계속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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