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입맛이 점점 퓨전화 하고 있다. 퓨전(Fusion)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져 새로운 것이 된다는 뜻이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조화를 통해 새로운 창작물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전통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의 핵심 전략 역시 '퓨전'이라는 뉴 컬쳐(New Culture)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외식산업의 세계화 전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전통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한 현지화다. 태국의 성공 사례를 들여다보자. 태국의 식문화는 음식을 반상 또는 대나무나 원목으로 만든 마룻바닥에 차려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 각자가 접시에 덜어 손으로 먹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서구문화가 유입되자 그들이 거꾸로 태국 음식의 서구화, 세계화를 시도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 태국 음식점은 1만1,000개로 늘었다. 그들의 전략은 현지에 맞는 음식의 퓨전화는 물론, 제공 방법에 있어서도 패스트푸드 유형과 현대적인 레스토랑 유형으로 글로벌 코드에 맞추는 것이었다.
세계 4대 음식 반열에 올라있는 중식은 음식을 퓨전화 한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성분을 각 나라별 소스로 대체하여 거부감을 줄였다. 기름진 음식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에게 대중적인 음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 최근에는 기름지다는 인식보다는 몸에 좋은 야채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으로 바뀌고 있다.
웰빙 음식인 우리 한식의 위상은 어떠한가. 2007년에 해외에 진출한 외식 브랜드 중 56% 이상을 한식이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건강식, 저열량식의 한식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과 기업들의 자생력으로 시작되어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아직까지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한식은 '매운 음식' 정도로 인식되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통 한식의 퓨전화, 뉴 컬쳐 전략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매운 김치 맛을 순화시키고 배 김치, 백 김치, 동치미 등의 시원한 맛으로 그들의 미각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운 김치 맛의 특성을 살려 스파이시한 독특한 창작 요리로 우리 음식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령 인도에 한식을 진출 시킬 경우, 인도 사람들은 식사 전에 반드시 물로 양손을 씻고 식사 후에도 반드시 손을 씻고 양치한 후에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을 테이블 코드에 접목시켜 핑거볼(손가락 끝을 씻기 위한 물을 담은 작은 사발)을 식사 전후에 제공하는 작은 미덕을 전략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은 부분에서의 퓨전화, 현지화 노력도 제도적인 힘이 뒷받침 되어야 흔히 말하는 세계화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2020년 식품산업은 전 세계 GDP의 18%에 달하는 5,000조원이고, 그 중 외식산업이 9%를 차지하는 전략적 수출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외식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냥 내수 소비산업이라 여겨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한걸음 늦은 행보를 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외식산업을 부가가치 산업인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보면서 한식 세계화의 기류가 한창이다. 500억원, 1,000억원 펀드조성의 하드웨어 측면도 중요하다. 그러나 각 진출 나라에 대한 마케팅전략과 세부적인 퓨전화 방향이 세계에서 한국의 뉴 컬쳐를 만들어가는 핵심 요소이다. '핑거볼의 미덕'과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에 보다 촉각을 세웠으면 한다.
김순진 ㈜놀부NBG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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