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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한국기업의 성공 DNA] <7> 세상과 미래를 우리가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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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한국기업의 성공 DNA] <7> 세상과 미래를 우리가 그린다

입력
2009.08.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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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오케이? 와. 됐어.", "성공이다."

2002년 9월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 4부스. 도장 공정의 마지막 단계인 검사장 출입구에 '초록' 불이 들어 오고 카멜레온, 짙은 파랑, 오렌지 색 도료를 칠한 투스카니 차량 3대가 의장 공정을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검사장 밖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KCC 연구진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감격의 포옹이 이어졌다. 10년 넘는 노력 끝에 국내에서 처음 물로 만든 옷(도료)을 입은 자동차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KCC가 물로 만든 자동차 도료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1992년.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 환경 보호 문제가 전 세계의 주요 이슈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특히 대기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VOC(상온ㆍ상압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에 대한 규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도료 및 도장산업은 VOC 발생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까닭에, 유기 용제 사용의 제한으로 인한 산업 활동이 큰 제약을 받을 상황에 놓여있었다. VOC를 줄이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자동차 산업 역시 VOC 절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KCC는 친환경 이슈가 도료를 포함한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물로 만든 도료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독일 허버츠(이후 미국 듀폰사가 인수), 바스프 정도가 수용성 도료 개발에 나섰을 뿐, 국내는 물론 세계 대부분 회사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KCC는 중앙연구소에 수계 수지 및 도료팀을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수용성 자동차 도료 개발에 나선다. 특히 95년 200억 원을 투입해 자동차 공장의 도장 공정을 본 떠 만든 수계 도장 파일럿을 세우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다. 김상훈 중앙연구소 이사는 "물은 증발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빨리 말리기 위해 별도 설비가 필요했고 생산성이 떨어졌다"면서 "표면 장력이 커서 각각의 부분이 똑같은 성질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본격적으로 물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5년이 넘는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드디어 문제를 해결했다.

열쇠는 원료가 되는 수지에 있었다. 김 이사는 "기존 수지는 물에 녹아 들어 물의 증발을 더디게 했는데 작은 크기의 입자들이 물에 녹지 않고 물에 떠 있는 형태의 '입자 형 수지'를 새로 만들어 물의 증발 속도를 빠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표면 장력 문제는 특수 첨가제를 개발해 이를 적절한 배합으로 섞음으로써 풀 수 있었다.

문태권 중앙연구소 도료연구팀 부장은 "세계적 기업들 보다 15년 늦게 연구개발(R&D)에 뛰어 들었지만 5년 만에 격차를 따라잡은 것"이라며 "심포지엄에 참석한 독일 회사 측 연구진조차 놀라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라는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났다. 문 부장은 "도료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자동차 회사들이 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데 당장 오늘이 급한 회사들이 먼 미래 일이라며 외면했다"고 회고했다.

KCC는 그러나 연구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애리조나와 플로리다의 공인 인증 기관에서 2년 넘게 진행된 '촉진내후성시험'을 통해 극한 상황에서 10년 넘게 색상이 지속될 수 있음을 인정 받았다. 과학기술부로부터는 국산 신기술 인증과 함께 최우수 기술에게 주는 KT 마크를 받았다.

2000년이 지나면서 뼈를 깎는 노력이 빛을 토해냈다. 유럽은 물론 일본과 북미의 자동차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수용성 도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현대자동차도 2001년 7월 울산 3공장 4부스를 유성, 수성 겸용 생산 부스로 개조했다. 이듬해 토스카니를 상대로 첫 번째 생산, 시판에 성공한다.

현장 적용도 만만치 않았다. 문 부장은 "수용성 도료에 쓰이는 아민이라는 물질이 썩은 홍어 냄새와 비슷해, 현장 인력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면서 "연구원들이 직접 찾아 다니면서 일일이 제품 성분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4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수용성 자동차 도료를 처음 적용함으로써 '물로 만든 도료 시대'가 본격 열렸다. 같은 해 12월 울산 3공장, 2005년 1월 기아차 화성 공장, 2006년 2월 현대차 울산 3공장에 수용성 자동차 도료를 적용했고, 1,2,5 공장에도 순차적으로 확대했다. 현재 NF소나타, 그렌저 TG 등 현대차가 생산하는 승용차의 80% 이상이 수용성 도료를 쓰고 있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생산하는 로체와 오피러스에도 KCC 수용성 도료를 적용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수용성 도료의 적용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2007년 12월 터키 하오스 공장을 필두로, 중국 베이징 현대차 제2공장, 이란 사이파 자동차 등도 수성 도료로 전환하고 있다.

KCC관계자는 "유럽, 미국, 한국, 대만은 이미 VOC 배출량에 대해 법적 규제를 만들었고 나머지 지역도 같은 흐름"이라며 "친환경과 우수한 품질이라는 장점을 지닌 수용성 도료의 쓰임새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KCC중앙硏 김범성 상무·김상훈 이사

"1990년대 초반 환경 규제가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었고, 수용성 도료 개발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하루 아침에 수출 길이 막힐 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위기감이 결국 물로 만든 자동차 도료를 만들어 낸 것이죠."

김범성(50ㆍ사진 왼쪽) KCC중앙연구소 상무는 11일 남들보다 일찍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게 성공의 열쇠였다고 강조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서야 자동차 도료 개발에 뛰어든 도료 업계의 후발 주자였던 KCC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수용성 도료 개발에 성공한 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것.

자동차 도료 책임을 맡고 있는 김상훈 이사(52)는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도료 기술을 전수해 줬던 독일 회사들도 우리 기술력을 보고 크게 놀라워 했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제품 가격은 낮추라고 하면서도 도장 공정 자체를 줄일 수 있도록 혁신 제품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도장 공법으로의 전환은 막대한 기술과 자금력이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자동차 도료의 세계화를 위해서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범용 도료의 개발도 시급하다"라며 "국내 자동차 거래선 별로 나뉘어 있는 다양한 도료가 아닌, 통합 도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상무는 이처럼 도료에서 인정 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재 사업에 KCC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료와 소재 모두 수지를 기초 원료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KCC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라면서 "폴리실리콘, 태양전지 보호용 필름 등 에너지 소재와 반도체 칩 접착제, LED의 사파이어 기판 등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강조했다.

KCC는 창립 50주년이었던 지난해 2012년까지 '돌로 뽑아낸 석유'로 알려진 실리콘 사업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해 2012년까지 세계 4대 실리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 전주에 실리콘 모노머(단량체) 공장을 세우면서 실리콘 사업에 뛰어든 KCC는 미국 솔라파워인더스트리와 2013년까지 1억 달러 규모의 고순도 폴리실리콘 장기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또 2012년까지 10만 톤 규모의 생산 설비를 추가 증설하고 있다.

김 상무는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태양 전지, LED의 주요 소재는 모두 일본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독차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의 독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유기, 무기 물질 모두를 섭렵하는 토탈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세계적 정밀 화학 회사로 우뚝 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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