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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텅 빈 광고인데 시선이 꽂힌다, 왜?

입력
2009.08.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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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과 강서지역을 연결하는 신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 역. 통행로 벽에 설치된 광고판은 백지나 다름없다. 빈 광고판인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광고판 모퉁이 부분에 낯익은 로고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눈에 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 또 현대카드네!"

현대카드가 또 '사고'를 쳤다. 고정관념을 깨는 독창적 광고로 유명한 현대카드가 또 하나의 파격을 선보인 것이다. 국회의사당역의 백지광고를 두고 업계에선 "역시 현대카드답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카드가 내는 광고마다 베스트셀러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를 비결은 뭘까?

철저한 전략적 광고

현대카드의 광고는 출발부터 파격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금융회사 광고라고는 믿기지 않는 독특함, 여기에 때론 공격적이고, 때론 자극적이었다. 광고계와 카드업계에선 이런 현대카드의 광고행태를 두고 호기심반, 비아냥반의 평가를 보냈지만, 실은 철저한 전략과 치밀한 계산의 결과물이었다.

2003년 현대카드의 첫 광고는 알파벳(M)으로 시작됐다. 당시 현대카드는 시장점유율 1.6%로, 카드업계의 마이너리티(소수자)였던 상황. 통상적 관념으로 본다면 소비자들에게 '현대카드'란 이름부터 각인시키는 게 먼저였겠지만, 오히려 '현대카드'명칭은 철저히 숨긴 채 카드명 'M'을 전면에 내세우는 역발상의 광고전략을 택했다.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한 알파벳 전술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이를 통해 현대카드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중독성 강한 로고송으로 유명해진 광고도 마찬가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W카드'를 출시하면서 현대카드는 마치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들에 둘러 쌓여 춤을 추는 여성을 등장시키는 파격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파격시리즈 3탄은 2006년에 애니메이션을 통해 기업설명회(IR) 형식으로 풀어놓은 '놀라운 이야기'편. 3년만에 초고속성장으로 1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선거판에서 승자에 표를 몰아주는 심리를 의미하는 '밴드왜건 효과'를 노렸다는 후문이다.

박세훈 현대카드 마케팅본부장은 "단순히 고객들의 눈에 띄기 위해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목표와 그에 따른 전략적 사고를 반영한 것이 현대카드 광고다"고 말했다.

기존 광고 문법의 철저한 파괴

현대카드 광고는 광고업계 내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광고문법'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 독특한 위상을 평가받고 있다.

예컨대 현대카드 광고에는 결코 '톱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스타급 배우를 등장시키는 다른 금융사들과는 철저하게 대비되는 광고 형식인 것이다.

광고제작 과정에서 광고주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포기하는 광고 수주 시스템도 숨은 힘으로 평가 받는다. 기본적인 마케팅 전략만 말해줄 뿐, 내용과 형식은 전적으로 광고회사에 맡긴다고 한다. 이 원칙은 광고 제작과정에서 광고회사와 접촉만 해도 징계를 내릴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진다.

실제 얼마 전 현대카드 직원이 광고회사 직원과 만나 광고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난 적이 있다. 이는 광고 회사들이 발주 회사나 최고 경영자의 눈치를 보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광고를 만드는 폐해를 막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회사 입장에서도 현대카드 광고는 힘들기로 유명하다. 현대카드 광고에 참여해온 광고사 TBWA 코리아의 김성철 수석국장은 "지난 6년6개월 동안 20번의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90여편의 TV광고와 180편의 인쇄광고를 제작했을 정도로 살인적 일정을 소화했다"며 "현대카드의 광고는 업계에서는 죽음의 레이스라 불릴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만큼 현대카드의 문법파괴형 광고는 효과도 높다. 최근 모 광고회사 조사에 따르면 '카드회사하면 어떤 회사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80%(복수응답)가 현대카드를 꼽았을 정도다.

박세훈 본부장은 "앞으로 현대카드 광고는 성장하고 있는 회사, 챌린저(도전자)라는 이미지보다는 금융권에서 달라진 회사 위상에 걸 맞는 존재감과 리더십을 알리는 방향으로 전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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