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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죽음을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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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죽음을 살아내기

입력
2009.08.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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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조치가 합법적으로 시행됐다. 처음에는 이 조치를 존엄사라고 불렀지만 곧 그 말이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호흡기 등 연명치료 장치를 제거하면 곧 죽음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환자는 지금껏 자발적 호흡을 계속하고 있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죽음에 대한 법적 권리를 얻었지만 자연은 아직 그를 놓아줄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사회가 부담 나눠져야

2004년에는 6년 간이나 식물인간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딸의 호흡기를 꺼 죽게 한 아버지가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재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지며 딸을 돌본 세월을 참작해 집행유예 판결을 했지만, 아버지는 딸을 죽인 멍에를 평생 지고 살아야만 하게 되었다.

1997년에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던 환자의 부인이 경제적 이유로 퇴원을 요구한 데 응했던 의사가 환자 부인과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들 모두 살인과 살인방조죄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포함해 네 식구를 10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부양해야 했던 부인으로서는 엄청난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이 일은 남편쪽 가족이 부인과 의사를 고소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묻힐 수도 있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의학적 충고를 따르지 않고 서약서 한 장만 남긴 채 퇴원하는 경우가 연간 몇만 건이나 된다.

첫 번째 사례가 가장 평화롭다. 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고 호흡기를 제거한 환자는 가족의 간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사례는 거의 순수한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다. 세 번째는 경제 문제에 가정폭력과 시댁 식구와의 갈등, 그리고 직접 호흡기를 제거한 의사의 역할 문제가 겹친 복잡한 양상이다. 이들 세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모두 끝났다. 여론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호의적이다. 의료계와 법조계는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토대로 연명치료 중단의 자세한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

하지만 그에 앞서 환자와 가족의 고통, 그리고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도덕적 부담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경제적 부담은 곧 도덕적 부담이고 법적 책임으로까지 이어진다. 대법원 판결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적 부담은 상당히 줄어들겠지만 경제적·도덕적 고통은 여전할 것이다.

현대 의료는 과도한 개입과 고비용이 특징이고, 그 기술과 비용은 생의 마지막 기간에 집중된다. 이 비용을 모두 환자와 가족에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적어도 경제적 이유로 도덕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몽땅 환자 가족이 짊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사회가 비용을 지출할 수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도 없는 생애 마지막 진료 비용을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생명의 진실 함께 고민을

도덕적 부담을 나누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적 특성상 환자 개인의 의사를 모든 결정의 근거로 삼는 서양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환자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되 가족 단위의 의사결정을 장려하고, 의학 전문가와 공익을 대표하는 인사가 참여하여 가족의 판단을 돕고 필요하면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병원윤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며 물리쳐야 할 적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명의 진실을 함께 나누는 운동도 필요하다. 죽음을 일정한 틀 속에 넣기보다는 어떻게 죽음을 '살아낼지'다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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