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그제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10월 경남 양산 재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잘 알았다. 당에서 상의해서 잘해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언뜻 예사롭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한 직무와 거리가 있는 일을 굳이 거론한 모양이 그리 산뜻하게 비치지 않는다.
회동 결과를 전한 당대표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박 대표의 결심을 듣고 격려한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양산 재선거 출마를 바라는 당내 인사가 여럿인 상황에서, 공천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속내를 의심할 만하다. 당 대표 개인의 정치행위에 슬쩍 대통령의 권위를 빌리려 한 정황이 '공사 혼동' '품격 손상' 등의 비난을 부른 듯하다.
박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경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의 후보 공천에서 뜻밖에 탈락했다. 당시 민주당과 '물갈이 공천' 경쟁을 벌인 한나라당은 표밭 영남권에서 박 대표를 포함한 25명의 현역의원을 탈락시켰다. 특히 박 대표의 공천 탈락은 강재섭 당시 대표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당내 공천 후유증을 덜고, 유권자에게 '개혁 공천' 명분을 부각시키는 상징으로 활용됐다.
박 대표의 재선거 출마 표명과 대통령의 '격려'는 이런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박 대표가 공천 탈락에도 불구하고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정치개혁 의지를 과시하던 때의 명분은 다 어디로 갔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박 대표가 국회의원이 아닌 당 대표로서 느꼈을 고충은 이해한다. 또 대통령이 '특별한 관계'를 배려하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정치인은 일관성보다는 가변적 상황 논리를 따르기 쉽다.
그러나 집권당 대표가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고상한 명분과 동떨어진 선거 출마를 시도할 때는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국민이 지난 일은 다 잊었으리라고 여긴다면 커다란 오산일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