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의 버킷(짐을 퍼올리거나 내리는 통)이 마치 소믈리에의 손처럼 정교하면서 매끄럽게 움직이며 잔에 와인을 따른다. 괴력 탓에 병이 조금만 닿아도 잔은 깨져버린다. 너무 멀면 와인을 흘린다. 21톤의 덩치를 가진 굴삭기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이, 시선은 굴삭기 조종간을 잡은 이정달(42ㆍ사진) 직장(사무직의 과장급)에게 모아진다.
그는 달인이다. 굴삭기로 못하는 게 없다. 굴삭기 버킷에 수저를 매달아 깨지기 쉬운 달걀을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 칼로 두부나 오이를 자르고, 붓글씨도 쓴다. 버킷만 없다면 손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교한' 능력 탓에 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굴삭기 시연이 직업인 '데몬스트레이터'(Demonstrator)가 됐다. 굴삭기와 만남은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를 졸업하고 굴삭기를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런 이유로 군 공병대에서 건설장비 관리 업무를 맡는 게 인연이 됐습니다."
그는 제대 직후 1993년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현 볼보건설기계)에 입사했다. 초기에는 연구개발센터에서 다른 사원들과 함께 굴삭기 시험 업무를 맡아왔다. 굴삭기 운전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2000년 사내에서 장비 시연 인력을 뽑는다는 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굴삭기 시연에 반해 고객들이 굴삭기를 곧바로 구매할 때가 가장 보람이 있습니다." 그는 전세계를 돌며 볼보건설기계 굴삭기의 우수성을 알린다. 지난달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현지 딜러와 정부투자기관 임직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굴삭기를 시연했다. 굴삭기 버킷이 손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일을 하자,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날 고객들이 구입한 굴삭기는 50대가 넘었다. 덩치가 제일 큰 70톤짜리 굴삭기는 무려 6억원. 통상 중간 크기의 굴삭기가 2억~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예술적인 손놀림으로 회사는 단박에 최소한 100억원 어치를 판매했다. 김희장 볼보건설기계 홍보팀장은 "이 직장이 시연하면 고객들이 자신도 그렇게 운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구매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달 인도를 방문하는 이 직장은 "고객들이 우리 제품으로 바꿔 만족스러워 할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외국인 고객들은 그의 시연을 보기 위해 국내로 몰려온다. 통상 매년 40여 개국에서 10여명 단위로 총 600여명이 방문해 그의 '연기'에 빠져든다.
그는 시간이 남을 때면 평택 서비스센터에서 교육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실업자가 많다는데 굴삭기 기사는 턱없이 모자란다"며 "젊은이들이라면 멀리 보고 굴삭기 운전에 도전해 보라"며 환하게 웃었다.
평택=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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