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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와 크다! 임자도 민어란 놈 임자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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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와 크다! 임자도 민어란 놈 임자 만났네

입력
2009.08.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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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전남 목포시를 찾았을 때다. 민어라는 물고기를 처음 만났다. 맛도 맛이지만 그 크기에 깜짝 놀랐다. 횟집 주인이 들고 들어온, 난생 처음 본 그 놈은 길이가 1m를 훌쩍 넘었다. 죽은 놈이었지만 주인은 가만히 들고 있기도 힘겨워 했다.

생선이라기보다 징그러운 짐승 같았다. 이 흉측한 놈들은 도대체 어디서 잡아 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목포 앞바다 전 수역에서 민어가 나지만 역시 최고는 임자도 근해에서 잡힌 것이라고 했다.

안도현 시인이 '혹여 전화하지 마라/올 테면 연분홍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 둘 것이니'라고 노래한 복사꽃 빛깔의 민어회 한 점을 씹으며 민어떼 울음 소리에 잠들지 못한다는 임자도의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다.

임자도의 민어는 예전 궁으로 보내졌던 귀한 진상품이었다. 삼복 더위를 달랠 복달임 음식 중 그 으뜸이 민어탕이고, 다음이 도미탕이고, 세번째가 보신탕이라 했다. 백성 민(民)자가 들어간 물고기지만 주로 양반네들 차지였다.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던 귀한 생선이었다.

예전 파시 중 가장 컸던 게 임자도 민어 파시라고 한다. 일제 때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앞에 있는 타리도에서 민어 파시가 열렸다. 해방 이후 민어 파시는 인근의 재원도로 옮겨가 1980년대까지 큰 성황을 이뤘다. 섬과 섬 사이를 배를 밟으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어선이 많았다고 한다.

배가 몰리면 돈이 몰리고, 그 돈을 따라 색싯집 여자들도 몰려들던, 풍요로 흥청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파시의 풍경을 이제는 임자도 가는 길목에 있는 송도수협위판장이 대신하고 있다.

임자도 주변에서 잡힌 민어들은 죄다 이 위판장으로 모여든다. 오전에 찾은 위판장에서는 마침 민어 경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바닥에 얼음더미가 두껍게 깔렸고 그 위로 축구 선수 허벅지만한 민어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작은 것은 5,6㎏였고, 큰 건 10㎏를 훌쩍 넘었다.

민어가 가장 많이 모이다 보니 값도 가장 쌀 수밖에 없다. 임자도보다도 이곳이 더 저렴하다. 위판장 바로 옆의 공판장에선 방금 경매를 마친 민어를 일반 소비자들이 살 수 있다. 보양수산(010_2310_9049)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수치(숫민어)는 ㎏당 2만5,000원~3만원 선이다. 다른 생선과 달리 민어는 암컷보다 수컷을 더 쳐준다. 암치(암민어)는 알이 너무 많고 살도 푸석거려 수컷에 비해 ㎏당 7,000~8,000원 싸다. 각 점포에 전화로 주문하면 냉동 포장해 택배로 보내 주기도 한다. 위판장 옆에 회 떠주는 곳도 있다.

민어는 고기가 크다 보니 부위별로 맛도 다르다. 또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이곳 사람들이 '풀'이라 하는 부레는 민어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다. "홍어의 진미가 애라면 민어엔 부레가 있다"고 한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서 단연 최고로 친다. 껍질은 살짝 데쳐 먹으면 쫄깃 거리고, 뼈는 잘게 썰어 씹어 먹으면 고소하다.

위판장을 뒤로 하고 민어들이 뛰어 논다는 임자도로 향했다. 지도의 점안선착장에서 철부선에 올라 20분쯤 눈을 붙이고 나니 섬에 도착했다.

임자도는 부자섬이다. 바다는 민어 말고도 병어 새우로 풍부하고 땅에선 대파밭 양파밭 염전이 돈을 긁어다 준다. 선착장에 내려 섬 반대편으로 내처 달리면 대광해수욕장이다. 한국에서 가장 긴 백사장이다. 길이는 무려 12㎞.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걷는다면 3시간은 족히 필요한 거리다.

대광이란 재미없는 이름은 주변 대기리와 광산리의 앞 글자를 따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원래는 베틀을 닮았다는 한틀마을(대기리)의 뒤쪽에 있다고 해서 '뒷불'이란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제에 의해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모래는 가늘고 부드럽다. 고개를 숙이고 본 백사장에는 엽낭게들이 먹이를 취하고 뱉어 낸 작은 모래뭉치들로 만들어진 수천 수만 개의 모래 구슬이 깔려 있다.

섬의 남쪽에도 아름다운 백사장이 있다. 가까이 이웃하고 있는 어머리해수욕장과 은동해수욕장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드물어 한적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들이다. 어머리해수욕장 모래톱 끝에는 용난굴이 있다.

해안 바위 사이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굴이다. 물이 빠지면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비좁고 축축한 굴 안을 따라 들어가면 반대 쪽으로 눈부시게 열리는 새로운 바다를 만나게 된다.

어머리해수욕장에서 오른쪽 임도를 타고 오르면 숨을 은(隱)자를 쓰는 은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작은 옥섬을 거느린 해수욕장이 한없이 아늑해 보인다.

임자도(신안)= 글·사진 이성원기자

■ 명품 새우젓갈타운 부푼 꿈

매주 금요일 송도수협위판장에는 새우젓을 담은 커다란 통들이 가득 들어찬다. 1,000여개가 넘는 새우젓 통의 도열은 거대한 설치 미술 같아 보인다. 새우도 민어처럼 임자도 앞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젓갈로 유명한 광천 강경 등의 상인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새우젓을 사가지고 올라간다. 전국의 새우젓 70% 이상이 임자도 주변에서 나온다고 한다.

임자도 북쪽 끝 동네 전장포가 바로 새우잡이의 메카다. 임자도 곳곳에 있는 염전에서 만든 천일염과 임자도 뻘바다에서 건져 올린 통통하게 살 오른 새우가 만나 짭조름한 새우젓이 탄생된다. 음력 5월과 6월에 건져 올린 새우로 담근 젓이 오젓 육젓이다. 지금이 제철인 셈이다..

민어 파시가 예전엔 타리도나 재원도에서 열렸던 것처럼 새우젓 파시도 93년 송도위판장으로 모이기 전엔 전장포에서 큰 규모로 열렸다. 지금은 전장포 등에서 출발한 새우잡이 배들이 임자도 앞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새우를 바로 배 위에서 염장해 송도위판장으로 향한다.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에 가면 예전에 사용했던 어선들이 전시된 걸 볼 수 있다. 그 목선들은 '멍텅구리배'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돛이나 노가 없어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배라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됐다.

낡은 배에 얼기설기 판자를 붙여 만든 허술한 목선을 바다 한가운데로 끌고 가 닻을 내린 뒤 고정시켜 그물을 치고 새우를 잡던 배다. 멍텅구리 배 안에는 4, 5명의 선원이 상주했다. 이들은 한번 출항하면 2, 3개월 바다에 갇힌 채 선주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 4번 들고 나는 물때에 맞춰 새우를 잡아야 했다.

배 바닥 작고 컴컴한 창고 같은 공간에서 물때와 물때 사이를 이용해 쪽잠을 자며 견뎠다. 1987년 태풍 셀마가 닥쳤을 때 임자도 인근 멍텅구리배 12척이 침몰했고 그 안에 있던 선원 52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던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새우잡이 애환이 담긴 멍텅구리배는 10여년 전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지금의 전장포는 조용하고 한산하다. 포구 마당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당시 위판장으로 사용했던 간이 건물만이 예전 전장포 파시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마을 뒤편 솔개산 기슭에는 새우젓 숙성을 위해 30년 전 파 놓은 굴이 4개 있다.

길이 100m가 넘는 긴 굴이다. 그 중 한 곳의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남은 드럼통이 빨갛게 녹이 슬어 썩어가고 있고 축축 늘어진 천장의 전깃줄이 습한 공기에 푹 젖어 있었다.

전장포에는 내년 말쯤 새우젓갈타운이 조성된다고 한다. 예전 새우젓 메카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이다. 옛 위판장 그늘에서 고스톱으로 소일하고 있던 주민들은 다시금 전장포가 들썩거릴 수 있을까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임자도(신안)= 글·사진 이성원 기자

■ 여행수첩/ 임자도

● 차를 가지고 임자도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평분기점에서 무안공항 방향으로 갈아타고 북무안IC에서 나온다. 77번 국도를 타고 가다 24번 국도에 오른 뒤 지도읍을 지나면 임자도 가는 점암선착장이 나온다.

● 임자도까지 선박 왕복 요금은 2,600원. 차를 실을 경우 3,500cc 이하 승용차가 2만원이다. 점암에서 탈 때는 표를 끊지 않고 그냥 탄다. 임자도에서 나올 때 한 번에 요금을 치르면 된다.

● 지도읍에서 증도 방향으로 직진하면 지도와 사옥도 사이의 송도를 지난다. 송도에서 지도대교를 건너기 직전 우회전하면 송도수협위판장이다.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공판장에서 민어 등 생선을 구입해 바로 옆 회 떠주는 집으로 가면 kg당 3,000원에 손질해 준다. 임자도에는 대광해수욕장 인근에 숙박 업소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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