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의 일이다. 저녁 약속에 맞추려고 택시를 타고 달렸다. 대치사거리에서 내려 몇 발자국 옮기는 순간 오른 다리가 비틀했다. 보도블록이 함몰돼 직경 30㎝ 정도 오목 팬 곳에 발이 빠져서 발목이 접질렸다. 복사뼈 부근이 얼얼했지만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퉁퉁 부어 오르고 통증도 심해졌다. 급히 택시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간단하게 깁스를 하고 목발도 받았다. 10만원 가까이 들었다. 보도관리 책임을 물어 구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까 하다가 개인적 불운으로 치기로 했다. 보도가 함몰된 사실만 알렸다.
■나중에 크게 후회했다. 깁스를 뗄 때만 해도 다 나았나 싶더니 1년쯤 지난 무렵부터 발목이 아파 수시로 다리를 절어야 했다. 물리치료를 하고, 관절주사를 맞고, 연골과 인대를 보강하는 약제도 투입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두 차례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하고서야 복사뼈 일부가 손상되고 인대도 정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원해서 관절경 시술을 받고, 두어달 목발 신세를 졌다. 직접 의료비만 200만원 가까웠고, 버스나 지하철 대신 탄 택시 요금까지 합치면 300만원이 넘는다. 그러고도 아직 발이 불편하다.
■보도에 상존하는 위험도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블록'과 함께 설치한 '유도블록' 일부가 주는 위협은 심각하다. 특히 유도하는 방향으로 보통 4개의 볼록한 줄이 들어가 있는 '유도블록'은 평소에는 괜찮지만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은 미끄럼틀처럼 미끄럽다. 조악한 시멘트 블록은 그렇지 않지만, 최근 들어 늘어난 고급형 블록으로 갈수록 위험이 커진다. 입자가 고운 시멘트, 구워 만든 타일 블록, 돌 블록 등도 위험한데 아예 플라스틱으로 만들거나 경질고무 등을 덧씌운 유도블록까지 있으니 '미끄럼 지뢰'와 다름없다.
■물에 젖거나 눈 덮인 유도블록을 무심코 밟았다가는 어지간한 운동신경이 아니고는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고령자라면 심각한 골절상을 입게 된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게 오히려 비장애인까지 위협한다. 유도선 부분을 거칠게 가공한 타일 블록이나 정으로 쫀 돌 블록, 미끄럼방지 테이프를 붙인 블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인 셈이다. 그런데도 최근 화강암 블록으로 말끔하게 단장한 명동 길의 유도블록이 유독 볼록 줄 부분만 매끈하게 갈려있는 걸 보면, 겉보기에 치중하는 행정의 무신경은 근치불능의 질병인 모양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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