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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대 불멸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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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대 불멸을 꿈꾸는가

입력
2009.08.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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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는 불멸성이 신과 인간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이다.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 불린 반면 모든 신은 불사(不死), '죽지 않는 존재'로 영원한 삶을 누린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신처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한줌 흙으로 돌아갔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운명은 인간뿐 아니라 삼라만상 전체의 운명이기도 하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로마는 폐허로 남았고, 중국의 거대한 자금성(紫禁城)도 주인은 간 곳 없고 빈 궁궐과 누각만 휑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우리들의 집도 주인이 서너 차례씩 바뀌었다. 몇 백 년을 살듯 떵떵거리던 이들도 다 죽었고, 대대손손 영원할 것 같던 재산도 결국 뿔뿔이 흩어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모든 것이 변하고 죽어 사라지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손에 쥔 권력과 재산이 영원하기라도 할 듯 그악스럽게 움켜쥐고 있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권력을 잡기 위해, 재산이 없는 사람은 부귀 영화를 누리기 위해 온갖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나고 나면 모두가 한줌의 재일뿐인데 왜 그 사실을 잊고 권좌에 오르고 부자가 되기 위해 그토록 안달하는가.

아마도 우리가 가깝게는 내일, 멀게는 몇 십 년 후 죽어야 할 운명임을 너무 자주 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마치 앞으로 백년은 더 끄떡없이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자꾸 뒤로 미룬다.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대학 들어갈 때까지' 유예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승진할 때까지, 집을 장만할 때까지, 아이들을 출가시킬 때까지'하면서 현재를 유예시킨다.

이런 우리들의 삶은 피난민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잠시 낯선 객지로 피난와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꿈꾸며 임시로 사는 이들처럼 부자가 되고 큰 집으로 옮기고 좀 더 잘 살기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고 내일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렇게 현재를 계속 유예하다가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얼마나 허망한가. 현재를 유예한 대가가 죽음이라니.

그런 허망한 죽음을 맞지 않으려면 현재를 충실히 사는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내일의 풍요라는 환상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위의 권력을 쥔 사람들이나 부자들치고 진실로 행복한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이들이 훨씬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비우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바꾼다면, 힘겨운 삶이나 고뇌의 바다에도 즐거움의 햇살이 비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부자 되세요'라는 요상한 구호를 버리고,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덕담을 나누면 어떨까.

그대 불멸을 꿈꾸는가. 꿈꾸지 마시라. 대신 이승에서의 지금 현재의 삶을 즐기시라. 내일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회한이 남지 않도록 현재의 삶에 충실하시라. Memento mori-Remember you shall die. 죽음을 잊지 마시라. 우리는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세상은 영원하지도 않음을 늘 기억하시라. 그러면 비로소 우리 앞에 놓인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 순간을 충실히 즐긴다면 덩달아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지리라.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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