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숲속 오지 마을인 '나세비투'.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국 젊은이들이 치는 북과 꽹과리 소리가 낯선 땅에 울려 퍼졌다. 원주민들은 흥에 겨워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장단을 맞췄다.
40여명이 자리한 객석에서는 연방 "비나까"(피지어로 '고맙다'는 뜻)가 터져 나왔다. 사물놀이 공연에 이어 주민들이 답례로 전통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국 젊은이들과 주민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은 고려대 사회봉사단 단원들. 단장인 이기수 고려대 총장을 포함해 교직원 6명과 학생 17명으로 구성된 단원들이 이곳에서 8일부터 11일까지 3박 4일 동안 펼친 집짓기 봉사 활동을 마무리하는 원주민과의 '작별 파티'였다.
촌장인 일리아사(46)씨는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카바'음료를 봉사단원 모두에게 돌렸고, 마을의 최고령 어른인 케사(86)씨는 단원들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봉사활동 기간 내내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봉사단 부단장 김한겸 학생처장의 얼굴에도 그제서야 엷은 미소가 피었다.
지난해 12월 출범 후 무료급식, 연탄배달 등 활동을 펼친 고려대 사회봉사단이 빈곤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도 동참키로 하고 첫 집짓기 해외 봉사지로 택한 곳이 이곳 피지다.
이 멀고 먼 남태평양 섬의 오지를 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 처장은 "국내에서는 낭만의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 피지가 실은 인구의 25%가 절대 빈곤층인 가난한 나라라는 얘기를 듣고 이곳 원주민 마을에 집을 지어주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300여개의 작은 섬들엔 각국의 리조트 시설이 들어 서 있지만, 80여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경상도 크기의 본토 섬은 휴양시설을 찾기 어려운 가난한 원주민의 땅이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집짓기 봉사에 나선 것도 처음이다.
봉사활동은 짐작한 것보다 훨씬 힘들고 험난했다. '오지 봉사'를 예상하긴 했으나, 나세비투는 상상 이상의 오지였다. 6일 서울을 출발해 비행기로 10시간 걸려 피지의 난디 공항에 내린 뒤 다시 낡은 버스로 9시간을 달려 8일 오전 나세비투에 도착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양철과 나무로 지은 집 9채에 주민 80여명이 모여 사는데, 주변은 온통 코코넛과 바나나 나무들 뿐이었다. 단원들 입에선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집 짓는 일도 순탄치 않았다. 피지 현지의 해비타트 지부로부터 건축 도구와 자재를 지원받기로 돼 있었으나, 현지에서 준비한 도구라곤 삽과 곡괭이 몇 자루가 전부였다. 봉사단은 첫 날 땅파기를 시작으로 기초 공사에 나섰지만, 도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작업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36㎡ 넓이의 터에 기둥을 세울 16개의 구멍을 파느라 학생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고전했다. 자재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어렵게 벽과 지붕에 쓰일 자재가 도착하면 시멘트 공장이 문을 닫아 시멘트를 구할 수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김 처장은 "현지 지부 사정이 어려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다른 국가의 봉사단이 대충 '투어' 수준으로 간간히 오다가, 우리가 진짜 집을 지으려고 하니까 현지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결국 집 한 채를 완공하려던 계획은 아쉽게 접고 기초 공사만 마무리한 채 나머지 공사는 피지 해비타트의 몫으로 남겨뒀다.
하지만 마을과의 문화교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학생들은 봉사에 앞서 지난달부터 매주 1,2차례 3~4시간씩 모임을 갖고 피지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태권도, 사물놀이, 과학실험, 영화상영 등을 준비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봉사단은 과학원리를 이용한 물로켓을 만들어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영화 '서편제'를 상영해 여성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을 앞마당에 설치한 농구 골대에 남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즉석사진기도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최고령 케사 할아버지는 "난생 처음 사진을 갖게 됐다"며 흐뭇해 했다.
봉사 하러 간 것이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은 쪽은 학생들이다. 주민들이 "불라"(안녕)와 "비나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낯선 사람을 만나도 '불라'라고 외치면 곧 친구가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자꾸 고맙다고 하는 것이지요."
단원 이다운(23)씨는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김현정(23ㆍ여)씨는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성현(23)씨는 "집을 완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마음 속에 집 한 채를 지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11일 오후 마을을 떠나는 봉사단의 버스에 오른 촌장 일리아사는 서툰 한국말로 "여러분,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박수로 답하자, 마을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꼬레아"를 외쳤다.
피지=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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