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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길선주 목사 64년만에 건국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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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길선주 목사 64년만에 건국훈장

입력
2009.08.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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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하고도 독립유공자 반열에서는 제외됐던 길선주(1869~1935) 목사에게 뒤늦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사연은 이렇다. 평양 출신인 길 목사는 기독교 장로파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지만 정작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들이 서울 인사동의 음식점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때는 현장에 없었다.

평양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에 길 목사는 민족대표들이 체포돼 끌려간 종로경찰서에 자진해서 출두, 1920년 10월까지 1년7개월간 함께 옥고를 치렀다. 그런데 재판부인 경성복심법원은 길 목사가 3ㆍ1 운동 당시 현장에 없었던 점을 감안해 무죄를 선고했다.

후손들이 길 목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신청을 한 것은 1977년. 하지만 민족대표 중 유일하게 무죄판결을 받은 점이 걸림돌이 됐다. 정부는 그간 길 목사의 공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포상을 보류하고 그의 공적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를 보완해 왔다. 결국 이번에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기까지 무려 32년이 걸린 것이다.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윤석원(1861~?)씨는 아들 창도, 관도와 함께 3부자가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유일한 경우다. 윤씨는 1919년 3월 평남 대동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해 일본인 헌병 1명과 조선인 헌병보조원 1명을 살해해 1년간 옥살이를 했다. 두 아들은 3ㆍ1 운동에 참가했다가 피살, 순국한 점을 인정 받아 96년 애국장에 추서됐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김장석(1892~1926)씨는 1919년 3월 함남 원산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징역 1년6개월, 1920년 8월에는 미국 의원단 방문을 계기로 친일파 처단과 관공서 파괴 등을 주장하는 인쇄물을 배포했다가 체포돼 또다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같은 애국장에 추서된 장 붕(1877~1955)씨는 임시정부 설립 초기 외교활동을 관장했고, 임시정부의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됐던 1923년에는 의정원 의장으로 임정의 유지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이들을 비롯해 건국훈장 119명(독립장 2명, 애국장 57명, 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1명, 대통령표창 52명 등 192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12일 밝혔다.

포상은 15일 제64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되며 해외 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유족에게 전수된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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