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전성시대가 있었다. 20년 전인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였다.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수상작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의 예술영화가 국내에 소개됐다. 높아진 경제수준, 할리우드 영화 일색에 질린 관객의 호응으로 전체 영화시장 점유율의 10%(지금은 1%도 안됨)를 차지할 만큼 흥행도 괜찮았다. <퐁네프의 여인들> <위선의 태양> <개 같은 내 인생> 같은 명작들이 줄줄이 개봉됐다. 그 아름다운 시절을 이끈 사람이 바로 영화사 백두대간 대표이자, 훗날(1998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 을 감독한 이광모다. 아름다운> 개> 위선의> 퐁네프의>
▦지금이야 정부지원으로 곳곳에 전용관도 생겼고, 멀티프렉스까지 예술영화 한편쯤은 상영하겠다고 덤비지만 당시만 해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이광모 감독은 동숭시네마텍을 직접 운영하며 자신이 수입한 예술영화를 상영했다. 큰 돈이야 아니지만 부가시장(비디오, DVD)이 있어 제법 수익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외환위기와 사회구조변화는 문화적 태도까지 바꿔놓았다. 그나마 몇 개 있던 예술영화상영관(코아아트홀, 시네코아)까지 문을 닫았다. 물론 동숭시네마텍도 수입한 영화를 창고에 쌓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흥국생명이 새 사옥에 예술영화 상영관을 만들고 이광모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극장 무료임대, 현장 인건비 부담에 매년 현금 1억원 지원'의 파격적 조건이었다.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이광모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렇게 2000년 12월 문을 연 씨네큐브 광화문은 그 동안 80여 편의 예술영화를 고집스럽게 상영했다. 덕분에 스크린쿼터 때문에 할 수 없이 상영한 <태극기 휘날리며> <놈놈놈> 같은 대형 한국상업영화의 관객 스코어가 오히려 가장 초라할 정도로 씨네큐브 광화문은 색깔 있는 극장이 됐다. 놈놈놈> 태극기>
▦최근 8월말까지 극장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통보를 받은 이 감독은 시원하면서도 서운했다. 현금 지원도 처음 2년 뿐이었고, 영화 수입과 마케팅에 따른 누적 적자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마디 상의나 설명 없이 나가라니. 많든 적든 매년 극장수익의 절반도 주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5년 남았는데, 이것으로 기업 이미지 높이기는 충분하다는 것인가. 흥국생명이 침묵하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업은 절대로 유ㆍ무형의 이익이 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예술이라 하더라도. 흥국생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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