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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중소(中小) 정치인' 시대

입력
2009.08.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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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이 이 달 말 총선에서 자민당을 누르고 제1당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4년 전 '고이즈미 돌풍'으로 자민당이 296석을 휩쓸어 가는 바람에 113석에 그친 민주당이 의석을 두 배로 늘릴 것이란 예상이다. 다만 중의원 480석의 과반수인 241석을 넘어설 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붕괴 예고된 日 '55년 체제'

민주당의 중의원 과반수 달성의 현실적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자민당은 4년 전 총선에서 압승하고도 참의원에서의 약세 때문에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유지해야 했다. 더구나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 자민ㆍ공명 연립여당이 과반수에 미달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에 따른 당내 혼선이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이 됐다. 민주당은 2년 전 개선에서 참의원 제1당이 됐지만 우호 정파를 합쳐도 117석으로 과반수인 122석에 모자란다. 자민당의 고통을 지켜본 민주당이 중의원 과반수를 달성해도 단독정권을 택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길게 보아 민주당의 중의원 제1당 부상은 그 자체로 정치사적 의미가 크다. '55년 체제'의 완전 청산과 정치지형의 재편을 뜻하기 때문이다. 1955년 일본사회당이 좌우 통합을 이루고, 자유당과 민주당이 자민당으로 합치면서 이뤄진 '55년 체제'는 보ㆍ혁 대결구도 아래 자민당이 장기집권하고 사회당은 만년 제1야당이되, 자민당이 개헌에 필요한 중의원 3분의 2 의석에는 미달했던 게 주된 특징이었다.

1993년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이듬해 자민당과 사회당이 연립함으로써 '55년 체제'는 정말 무너진 듯했다. 그런데 1년 뒤 자민당이 단독정권을 되찾아 '55년 체제'는 절반쯤 되살아 났다. 사민당의 몰락으로 보ㆍ혁 대결이 보ㆍ보 대결로 바뀌었지만 자민당 집권이란 축은 건재했다. 특히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에는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자민당은 고이즈미 이후를 맡을 지도자를 키우지 못했다. 타고난 정치 거물은커녕 창의적 정치행위로 대중적 인기를 끈 고이즈미 같은 인물도 없었다. 대책 없이 총선 패배로 치닫는 자민당의 모습은 고이즈미 시대가 '55년 체제'의 회광반조, 죽기 직전 잠시 생기를 띠는 현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55년 체제'의 붕괴 과정이 16년 만에 막바지에 이른 셈이다.

자민당의 쇠퇴는 정치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치환경은 크게 바뀌어 과거와 같은 정치 거물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거듭된 정치개혁으로 정경유착 고리가 끊겼고, 소선거구제 도입은 계파 보스의 독자적 공천권을 약화시켰다. 돈과 공천으로 졸개들을 거느리며 지도력을 키우고, 그런 모습을 과시해 대중에게 카리스마를 투사하던 방식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려면 한 사람을 축으로 한 소용돌이보다는 중형(中型) 지도자들끼리 연대하거나 집단지도체제를 꾸리는 권력 분담, 다원화가 낫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집단지도체제를 갖추고 번갈아 대표를 맡은 데 비해 자민당은 총재 중심 체제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총재 개인에 대한 실망이 정당 지지도 하락으로 직결됐다.

한국도 '3김 시대' 청산을

눈을 안으로 돌리면 '3김 정치'의 잔재가 보인다. '3김 정치'하면 정치 거물 3인의 지역분할과 상호 경쟁ㆍ대결이 떠오르지만 그들을 거물로 키운 것은 역설적으로 군사독재 정권이었다. DJ와 YS는 오랜 투쟁으로 컸고, JP는 권력내부의 비판적 지지자였다. 그들의 시대는 갔다. DJ는 물론이고 JP도 건강하지 않다.

그런데도 부(負)의 유산인 대결 정치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지역주의 상처까지 마구 들쑤신다. 정치적 무게로는 '3김'이 아득한 '중소 정치인'들이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 어설픈 '3김' 흉내를 내고 있으니, 전투적 리더십 대신 조정과 화합의 지도력을 희망하기도 쑥스럽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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