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이 살아 노래하고 춤춘다. 보름달이 뜬 음산한 숲 속, 빨간 장난감 버스를 타고 가는 장난감 나라, 갈비뼈를 지붕 삼은 고래 뱃속까지, 순식간에 전환되는 무대는 잘 색칠된 그림책을 넘기는 것 같다. 게다가 배우들의 알록달록한 의상에 과장된 분장이란. 영락없는 아동극의 모습이다.
이탈리아 뮤지컬의 첫 내한 공연으로 주목받은 '일 삐노끼오'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까를로 콜로디의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을 영화감독 출신 사베리오 마르코니가 연출한 이 뮤지컬은 2003년 밀라노에서 초연한 이래 이탈리아의 간판 뮤지컬로 자리매김했고, 비유럽권으로는 처음 한국에 상륙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추천으로 2년 전부터 기획된 이번 공연은 오페라 본국의 작품답게 성악을 비롯한 록발라드, 힙합, 이탈리아 전통가요인 칸초네, 라틴음악 등 22곡의 다양한 음악이 돋보인다. 음악은 이탈리아 록밴드 '이 푸'(I Pooh)가 맡았다.
볼거리도 풍성하다. 따뜻하게 쏟아지는 조명과 무대 및 400여벌의 의상이 원색의 향연을 이룬다. 요즘 뮤지컬 추세를 따른 아크로바틱, 비보이의 현란한 몸짓도 동화 속 나라의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겉모양이 아동극 같다고 해서 우습게 본다면 오산이다. '일 삐노끼오'의 가사는 시적이고 철학적이라 어른에게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인생은 항상 떠도는 거야"(인어),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운명을 거슬러"(합창), "볼품없는 인생과 슬픈 미래에서 우리는 풍요를 선택할 뿐"(여우와 고양이) 등의 노랫말이 그것이다.
공연이 끝날 무렵이면 관객들은 삐노끼오가 극중에서 배우는 '자유''진실''사랑'의 가치를 상기하게 되고, 제페토를 통해서는 부모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는다.
삐노끼오가 달님에게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할 때 감동은 극에 달해 어른들의 눈에는 촉촉한 이슬이 맺히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공연이 끝난 뒤 포토월에서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난 어른들이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원어로 공연되는 탓에 자막과 무대를 동시에 소화하기 힘들다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깜짝 한국어 대사나 유쾌한 무대 매너는 그것을 충분히 달랜다. 기획사 SMI엔터테인먼트는 '일 삐노끼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뮤지컬 '로빈훗'과 '피터팬'의 국내 공연도 추진 중이다. 23일까지. (02)3461-0976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