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사상 5번째 1,000만 관객 돌파를 바라보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련이 있었다. '두사부일체'와 '색즉시공'으로 도약했던 그는 2003년 '낭만자객'으로 나락에 떨어졌다. 흥행(90만명)에 참패하고 평단의 혹평까지 떠안았던 이 영화를 윤 감독은 "자신감과 자만심의 차이를 가르쳐주며 나를 키워준 작품"으로 기억한다.
'낭만자객'의 후유증은 혹독했다. 차기작에 대한 투자 회피와 출연 기피가 이어졌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내면 배우들이 고개를 젓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다시 일어서기 힘든 감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 한 명의 배우, 하지원은 예외였다. "고맙게도 하지원은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출연 결정을 내렸다. '색즉시공'으로 진 빚을 갚을 기회라는 것이었다." 윤 감독의 감회 어린 회고다.
그렇게 촬영에 들어간 '1번가의 기적'은 윤 감독에게 '해운대'를 향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해운대'의 주연 연희 역은 하지원에게 돌아갔다. "능력보다 사람 됨됨이가 우선"이라는 윤 감독이 '의리 캐스팅'을 한 것이었다.
윤 감독이 의리로 일어섰다면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은 뚝심이 빛난다. 지금이야 흥행작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전작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의 시작은 미약하기만 했다. 두 작품 모두 개봉 전 관객들의 눈길을 받지 못했고, '조폭마누라2'와 '중천' 등 경쟁작의 위세에 각각 눌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두 영화는 입소문을 타며 극장가를 오래도록 지켰고 결국 승자가 됐다. 감독 2명이 중도에 나가떨어졌던 '미녀를 괴로워'를 신데렐라로 변신시킨 것이나, 7개월 동안이나 '국가대표' 촬영에 매달린 점도 김 감독의 뚝심을 웅변한다.
9일까지 '국가대표'의 성적표는 233만명. 지난 주말 좌석점유율(58.9%)이 1주일 전(44.1%)보다 14.8%포인트나 뛰었다. '해운대'가 일으킨 흥행 쓰나미에 가렸지만 '미녀는 괴로워'(662만명) 보다 빠른 흥행 행보다. 김 감독의 뚝심이 이번엔 어떤 결과를 부를까 사뭇 흥미롭다.
관객 수만 따진다면 올 여름 충무로의 빅매치는 이미 판가름 난 듯하다. 하지만 의리의 '해운대'와 뚝심의 '국가대표'가 연출하고 있는 '흥행 쌍끌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 여름 극장가가 유난히 뜨겁고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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