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굴을 돌아들어서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상제가 사는 백옥루의 기둥이 네 개만이 서 있는 듯 아름답구나. 중국의 명장 공수가 만든 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떴는가.'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 >에서 총석정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관동팔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총석정은 강원도 통천군 해금강 북쪽에 있다. 정육면체 주상절리(바위기둥)가 다발로 묶여 늘어서 장관을 이룬다. 동해의 거센 파도가 부서지며 용솟음치는 위로 갈매기들이 나는 모양은 예부터 시인묵객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관동별곡>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이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찍은 사진의 배경은 총석정의 바로 이런 모양을 그린 그림이다. 미국의 보수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 8일자는 이 그림을 "독재를 강화하고 지도자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전체주의적 키치(kitchㆍ저속한 예술) 미술의 전형"이라고 혹평했다. 새들은 낙원을, 맹렬한 파도는 지도자의 압도적 힘을 가리키는 은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그림에 그런 메시지가 담겼다고 해도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 이 그림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의 김성근 작품이다. 그는 변화무쌍하고 격랑하는 파도의 묘사에 뛰어나 '김 파도'로 불리며 북한 예술가의 최고 영예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다. <<총석정의 파도> > 외에도 < <해금강의 파도> > < <해칠보의 파도> > 등의 걸작들이 있다. 이탈리아 로마 '세계수채화경연'에 파도를 그린 작품을 출품, 세계콩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0년 6ㆍ15 정상회담 뒤 서울에서 열린 '세계평화미술제전 2000'에도 작품을 냈다. 해칠보의> 해금강의> 총석정의>
▦ 총석정 파도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방북 인사들이 김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할 때 배경으로 이용되곤 했다. 1998년 1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아들 정몽헌 회장과 함께 소떼를 이끌고 방북했을 때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대표의 방북 때 그랬다. 10ㆍ4 남북정상회담의 기념촬영 배경도 이 그림이었다. 총석정은 정주영 회장의 고향인 통천군 아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유명을 달리한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의 대북사업을 이끌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어제 육로로 평양을 방문했다. 일이 잘 풀려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 총석정 관광도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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