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의 하나가 소설 속 화자를 소설가와 동일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화자와 소설가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설령 소설 속의 화자가 소설가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설가의 삶을 반영하지 않는 소설도, 또한 없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김도언(37)씨는 세번째 소설집 <랑의 사태> (문학과지성사 발행)에서 일상과 소설의 거리를 최대한 밀착시키면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랑의>
수록작들은 모두 1인칭 시점에서 쓰여져 있으며, 대개 소설가가 화자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씨에게 소설은 "나는 한 순간이라도 나로부터 벗어났는가?"(104쪽)를 묻게 하는 자기반성의 매개체이다.
두번째 소설집 <악취미들> (2006)의 연장선상에서 김씨가 관심을 갖는 인물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변부, 상식과 관습을 버거워하는 비주류 인간들이다. 김씨의 1인칭 소설 속 인물들은 대략 이렇다. 악취미들>
야구판에 적응하지 못한 신인 선수나 부진에 허덕이는 선수들이 1루로 진루하면 팀의 전략이나 투수의 주무기를 알려주며 '선수가 인간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진 노장 야구선수('전무후무한 퍼스트베이스맨'), 불구인 아내를 극진하게 간호하지만 동시에 연상의 여성 편집자의 연인이 돼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내 생애 최고의 연인'), 부모가 이혼하자 히말라야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자기암시를 하며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모텔에 혼자 투숙하는 사내들에게 가끔 몸을 내주는 20대 여성 랑(표제작)과 같은 이들이다.
표제작의 랑을 묘사하며 화자는 "나는 대체로 이런 기형적인 존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라고 뇌까리는데 그것은 계약관계로 개인을 규율하는 근대적 시스템, 합리성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대변한다.
부모와 두 형 등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지극히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기술한 '다큐멘터리 가족극장'과 한 전위 소설가의 가상 자서전인 '어느 위대한 소설가의 자술연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길 대신 소설가의 길을 선택한 작가의 자기변호로 읽히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화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으로 대학시절부터 "니체가 가장 성스러운 방탕의 양식이라고 했던 예술에 심취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신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어느 위대한…'의 주인공인 작가는 유부남과 미성년의 섹스행각을 소재로 한 자신의 작품에 쏟아지는 격렬한 비판에 대해 "나의 '주적'은 바로 도덕의 허위입니다"라고 거세게 반발한다. 우리가 합의됐다고 믿고 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늘 회의하고 비틀어보는 소설가의 숙명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녹아있다.
10년간 일했던 출판사에서의 "월급쟁이 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김씨는 9월부터 12월까지 역시 소설가인 부인 김숨(35)씨와 함께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할 예정이다.
"자신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행위 속에서 나 자신과 타자와의 화해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내가 겪은 체험들을 의도적으로 투영시켜 보았다"는 김씨는 "미국에서 속도와 물신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느림과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 장편소설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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