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0일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도 새 전기를 맞게 됐다. 일단 그의 방북에 맞춰 남북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개성공단 억류 직원인 유모씨 문제가 해결될 공산이 커졌다. 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현 회장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가능성이 높아 이명박 정부와 북측 간의 간접 메시지 교환도 이뤄질 전망이다. 남북관계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 회장의 방북은 북한의 사업 파트너인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제의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아태위는 대남 사업을 주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기구다. 게다가 이날 평양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북한이 막고 있던 육로를 통해, 그것도 제한이 계속됐던 오후 시간대에 이뤄졌다. 또 방북하는 현 회장 일행은 북측의 요구 때문에 3명으로 단출했다. 과거 사업 협의차 수십명이 함께 방북했을 때와는 달랐다.
한 정부 소식통은 "대부분의 정황은 북측이 이번 현 회장 방북을 특별하게 본다는 뜻"이라며 "북측에서 소수 인원의 방북을 요구한 것도 김정일 위원장 면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징조"라고 전했다.
방북의 일차적 목표는 3월30일부터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씨 석방 교섭이다. 북한이 현정은 회장을 평양으로 부르면서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민간 분야에서 남북관계를 개척해온 고 정주영, 정몽헌 회장 등 현대 가문을 잇는 상징적 인물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이후 미국인 여기자 2명을 풀어준 상황에서 남한 인원만 붙잡고 있는 것도 북한에는 부담이 된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덜고 9월 이후 미국과의 대대적인 협상 국면에 대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북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10일) 예심(최대 4개월) 기간을 고려하면 공교롭게도 11일이 유씨 석방 기한이기도 하다. 이번 방북 과정에서 북측의 직접적 언질은 없었지만 이르면 11일, 늦어도 현 회장이 귀환하는 12일에는 유씨가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의 전기가 될지도 관심이다. 김 위원장이 면담 과정에서 지난해 7월 발생했던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유감을 표시할 경우 우리 정부도 전향적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통일부와 현대는 현 회장의 방북 문제를 사전에 긴밀히 협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의 민간 대북 특사로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를 통해 북한에 새로운 제의를 할 가능성도 다분해 더욱 주목된다.
물론 북한이 동해에서 나포한 800연안호 선원 4명을 함께 풀어줄지도 변수다. 게다가 개성공단 임금 및 토지임대료 협상도 김 위원장 결단 없이는 쉽게 정리되기 어렵다. 두 사안까지 함께 푼다면 김 위원장의 전향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도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을 바꾸기에는 부담이 커 유씨가 석방되더라도 당분간 남북의 기싸움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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