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저녁. 강원 양구군의 복지문화센터에서는 한 여름 밤의 열기를 꿰뚫는 젊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 탓에 온 몸을 구릿빛으로 그을린 군 장병들과 지역 주민들이 LG화학의 메세나(문화 예술ㆍ스포츠 활동을 돕거나 공익 사업 등을 지원하는 기업의 활동) 프로그램 '뮤지컬 홀리데이'가 제공하는 공연 '조선나이키'를 관람하며 열광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나이키 신발을 갖고 싶어하는 벙어리 중학생의 꿈과 희망을 그린 '조선나이키' 외에도 오랫동안 원수 지간이었던 바다과자 가문과 육지과자 가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과자이야기' 등 뮤지컬 2편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1석 2조'의 효과를 얻으며 대성공으로 끝을 냈다. 더운 여름 무더위로 고생하는 군 장병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고, 평소 좋은 공연을 보기 힘들었던 지역 주민들은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국내 대표 화학기업인 LG화학이 찾아가는 메세나 '뮤지컬 홀리데이'를 시작한 것은 2007년.
문화ㆍ예술 분야에서 의미 있는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던 LG화학은 '국악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문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국악 뮤지컬 전문 극단 '타루'가 군 장병들 위한 문화 예술 활동의 기회를 넓히고자 후원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LG화학은 곧바로 '타루'측과 접촉해, 함께 머리를 맞댔고 군 장병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기로 뜻을 모았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 군 장병의 병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미래 LG화학의 고객들에게 좋은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는데도 한 몫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LG화학은 극단 '타루'와 함께 '뮤지컬 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강원 철원군, 경남 고성군 등 외딴 지역에 있는 군 장병들을 직접 찾아갔다.
2007년 5월 9일 대전 육군본부를 시작으로, 올해로 3년째를 맞는 '뮤지컬 홀리데이'는 지금까지 울릉도, 백령도, 강원 양구군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17회에 걸쳐 공연을 성공리에 이끌어 왔다.
특히 처음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데서 벗어나 인근 지역 주민까지 초청하는 행사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3년 만에 무려 1만2,000명이 무료로 질 높은 공연을 관람했다.
올해부터는 군 장병들이 직접 단역으로 뮤지컬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찾아가는 뮤지컬에서 참여하는 뮤지컬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LG화학의 메세나 활동에 대한 군의 관심은 뜨겁다. 지금껏 대중가수 초청 공연이 주류를 이뤘던 문화 프로그램에서 탈피해 수준 높은 국악 뮤지컬을 접하게 되면서 병영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공연을 본 장병들이 국악은 다가가기 힘든 장르인데 퓨전 뮤지컬로 보니 부담이 없었고 부대 밖에서도 접하기 힘든 좋은 공연을 부대 안에서 볼 수 있어 더 뜻 깊었다는 소감을 보내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전통 국악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춰 유쾌하고 재치 있게 재해석해 문화 생활의 사각 지대에 놓인 지역 주민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LG화학 최고인사책임자(CHO) 육근열 부사장은 "군 장병들을 위한 문화예술 활동이 거의 없는 탓에 군인들의 정서가 메말라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메세나 활동에 뛰어들었다"라며 "'뮤지컬 홀리데이'를 계기로 더욱 다양한 메세나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구=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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