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여전 비정규직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100만명이 해고된다며 나라가 당장이라도 결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를 유예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이 사생결단식의 대치상태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해고대란'은 과장이었음이 명백해졌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기업체들이 정규직 전환을 꺼려 해고했더라도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하면 해고된 사람들이 실업상태로 계속 있는 것이 아니고 재취업되기 때문에 누적된 인원을 토대로 대란이 일어난다고 판단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이를 도외시한 채 앵무새처럼 해고대란을 외쳐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애당초 현장에서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법이 시행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를 예측하는 것은 정부부처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데도 노동부는 이를 소홀히 했다. 국회도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마치 있지도 않은 허상을 보고 놀라 국가 전체가 한바탕 소동을 벌인 꼴이 됐다.
이번 비정규직 사태는 잘못된 정책적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지를 보여주는 정책실패 사례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국회 통과 후에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미디어법을 보면 자칫 비정규직법 꼴 나는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막상 법안을 통과시켜놓고 보니 앞날이 가시밭길이라는 징후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판을 벌여놨지만 실제 참여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그런 연유다.
정부는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이 여론의 다양성과 미디어산업 발전 등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가 짧은 시간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진입 초기 5년 동안 1조원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이라는 게 방송업계의 분석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청률이 1% 안팎인 일반 PP들과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상황에서 이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을 만한 여력을 갖춘 사업자가 쉽게 나타날지 의문이다.
광고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메머드급 종편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이 여러 곳 가세할 경우 과당경쟁으로 방송사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정부에서는 민영 미디어렙 제도 도입과 중간광고, 간접광고를 허용해 광고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복안이지만 그런다고 광고시장이 크게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잘못된 통계자료에서 드러났듯이 대기업이 방송사업에 참여하면 2만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도 신뢰를 잃었다. 대기업의 방송참여가 기존 방송사의 M&A를 가속화하고 경영효율을 앞세워 일자리를 오히려 줄일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미리 정해놓은 목표에 꿰어 맞추듯 밀어붙여서 과연 제대로 된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훗날 2009년의 국회는 잘못된 허상을 붙잡고 허깨비 춤을 춘 한 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이충재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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