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에 관한 한 '살아있는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리처드 베이커(69) 사관이 이달 말 퇴임한다. 그는 상원의 역사는 물론 전ㆍ현직 상원의원들의 개인적 취향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사관이 속해 있는 상원 사료국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 많은 공문서의 폐기를 시도함에 따라 상원이 자체 문서의 폐기를 막아내기 위해 70년대 중반에 설치한 독특한 기관이다. 베이커는 당시 초대 상원 사관에 임명된 뒤 34년간 의원들 가장 가까이서 활동해 왔다. 때문에 상원 지도부가 중요한 정국 현안 처리 절차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선례 등을 자문할 때, 의회 출입기자들이 역대 통계를 문의할 때 단골로 찾는 사람이 바로 그다.
이들만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베이커 사관은 의사당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상원 감옥은 어디 있나요"라며 황당한 질문을 하거나 "1814년 영국군이 의사당을 공격했을 때의 흔적은 어디 있냐"고 물을 때에도 답변을 해줘야 한다.
베이커 사관은 미 건국 200주년 행사나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 추진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문위원 등으로 참여했다.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표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에는 상원의 대외정책사에 관해 강연을 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6일 치러진 은퇴 축하 행사는 민주ㆍ공화 양당의 상원 지도부가 대거 한자리에 모였을 정도로 예우와 격식을 갖췄다.
베이커 사관은 "역사가는 은퇴가 없어 좋은 직업"이라며 퇴임 후에도 상원 역사에 관한 책을 저술할 계획을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NYT)는 8일 전했다. 올해 91세로 상원 내 최고령이면서 50년간 재임해온 로버트 버드(민주ㆍ웨스트 버지니아) 의원은 "베이커는 99명 상원의원을 모두 상대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고 탁월한 업무 능력을 평가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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