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 이후 미 행정부의 북핵 정책을 놓고 다시 말이 엇갈리고 있다. 백악관이 여러 차례 공언한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정책이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북핵 실체는 인정하되 확산을 방지하는 '봉쇄정책'으로 속내가 바뀌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강남1호가 6월 미 해군의 추적을 받은 끝에 북한으로 회항한 것은 이런 논란에 여전히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대량살상무기(WMD)를 실은 것으로 의심받던 북한 선박을 미 해군이 아무런 조치 없이 뒤쫓기만 한 것은 미 행정부의 북핵정책이 봉쇄로 선회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간) 전투기 훈련 연료조차 부족할 정도인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 도발 능력이 없다고 보고 미 행정부가 북핵을 관리하는 '봉쇄'로 방향을 전환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관리를 인용, "북한의 최대 자산인 핵프로그램 노하우를 외국에 팔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이는 핵으로 돈을 벌려는 북한 정권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백악관 주변에서는 "북한이 매주 핵실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나온다고 한다. 협상에 의한 핵폐기는 어렵다고 보고 북한이 보유한 많지 않은 핵물질이 핵실험으로 소모되기를 기대하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봉쇄로의 북핵 정책 전환 논란은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때 이미 불거져 나왔다. 핵실험 등 도발이 협상용은 아니고 핵보유국으로 향하는 '수순 밟기'라는 인식이 미 행정부에 확산됐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이런 판단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논란의 초점이었다. 이런 시각에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는 북핵 폐기가 아니라 봉쇄의 일환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현재 공식적으론 이런 변화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핵무기 야망을 포기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똑같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라고 거듭 못을 박았다.
미 행정부 북핵정책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앞서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책불변을 강조하면서도 클린턴 방북 때 북한이 북미 관계개선을 바라는 신호를 보냈다며 여지를 남긴 것도 북미간 모종의 타협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 대북정책의 변화는 대 이란 정책에 악재로 작용, 미 행정부가 섣불리 북핵 폐기 카드를 버리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북핵 용인과 이란 핵 불용은 이중잣대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미 행정부의 북핵 정책이 불투명해지는 것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지금으로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미국의 메시지를 확인한 북한이 어떻게 나오냐를 보면 역으로 미국의 정책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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