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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삼복더위를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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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삼복더위를 이기는 법

입력
2009.08.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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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 하늘에는 수채화 같은 뭉게구름이 뜨고 쾌청하여 성하(盛夏)의 계절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마가 물러나면서 전국이 연일 찜통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낮에는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해가 진 이후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열대야 현상이 심야까지 이어지는 곳도 있다. 이 더위를 어떻게 이길까, 이리저리 궁리하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음력 6월 15일 유두가 지나고 말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조들은 유두날 계곡으로 가서 목욕을 하거나 탁족(濯足)을 하며 더위를 피했다. 올해 유두날은 긴 장마로 인해 물놀이 갈 형편이 안 되었지만 장마가 물러나고 삼복더위가 기승인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피서철이 아닌가 싶다.

요즘 사람들은 피서를 쫓기듯이 해치우곤 한다. 짧은 휴가 기간이 집중적으로 겹치는 바람에 전국 곳곳의 계곡과 해수욕장은 피서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휴가철 고속도로는 온통 막히고 자동차 에어컨 바람에 냉방병이 걸릴 정도로 지친 상태로 도착한 피서지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도무지 피서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다. 찬 음식을 먹어 속은 허해지고 쫓기듯 돌아온 생활의 현장에 갖고 온 것은 스트레스와 피로뿐이다.

옛 선조들은 이런 더위를 어떻게 이겼을까? 땀을 많이 흘리는 삼복의 계절에 선조들은 원기를 회복하는 음식인 개장국이나 삼계탕으로 이열치열, 더위를 이겨냈다. 산란기를 앞둔 민어로 끓인 매운탕은 미식가의 입맛을 돋우며 임자수탕, 용봉탕과 함께 복달임 보양음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빙표를 주어 석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가게 하였다. 서빙고의 얼음은 활인서의 병자와 의금부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인권 의식이 지금보다 못하지 않다.

산간 계곡으로 들어가 탁족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다. 한옥 대청마루 위에서 뒤란의 대밭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대류현상을 이용해 천연의 바람으로 더위를 식혔던 것이다. 모시나 삼베 옷을 해 입고, 밤에는 찬 성질의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안고 잤다. 우리 겨레는 유두와 삼복으로 이어지는 더위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연을 벗하며 더운 여름을 났다.

여러 가지 바쁜 일로 여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이번 여름엔 선조들의 지혜를 빌어 더위를 넘길까 생각중이다. 대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다 대금 산조를 들으면 머리 속이 청량해지고 더위는 한풀 꺾이는 것 같다. 주말엔 집 근처 북한산 자락의 뒷산에 올라 시원한 그늘 아래 돗자리 펴고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을 즐기리라. 풍부한 산소와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해소와 심폐기능 강화에도 좋다. 말복엔 민어매운탕으로 원기도 보강하고 더위를 이겨볼 심산이다.

여름은 더워야 오곡백과가 제대로 영글어 알찬 가을의 수확을 맞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서도 제대로 해야만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를 풀고 새로이 활기찬 심신으로 일할 수 있다. 선조들이 자연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더위를 물리쳤던 것처럼, 온고지신의 지혜를 좇아 현 대에 어울리는 피서 방법을 고안하면 좋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계승이 아닐까 한다. 진정한 전통은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옛 방식을 현대의 요구에 알맞게 고쳐 활용하는 것이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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