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장애인직업재활지원센터. 160㎝가 안 되는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헝클어진 머리의 재중동포 최국권(30)씨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료진료소로 들어섰다. 평소 당뇨를 앓고 있는 최씨는 애써 번 돈을 번번이 치료비로 날려 이날도 두려운 마음으로 센터에 들어섰다.
무료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비싼 약값도 공짜일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씨는 30분 후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는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송파구 무료진료소가 인기를 끌고 있다. 건물 2층 한 쪽에 마련된 82㎡ 남짓의 이 무료진료소에는 내과와 신경외과, 피부과 전공의 4,5명과 처방전에 따라 약을 제공하는 약사 2,3명이 근무하고 있다. 또 제약회사 직원과 송파구보건소 직원들은 환자 접수와 안내를 맡고 있다.
한 곳에서 안내와 진료, 처방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니 매월 둘째주 일요일인 진료일만 되면 대기실에는 스리랑카, 몽골, 필리핀, 중국에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들로 넘쳐 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 보니 당뇨병, 근육계 질환, 알레르기부터 감기까지 다양한 병을 앓고 있다. 2시간 동안 이 곳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는 40여명에 달했다.
올 3월 한국으로 건너와 마천동의 일식집에서 일하고 있는 최씨는 "당뇨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싼 진료비 때문에 병원 문턱에는 가볼 생각도 못했다"면서 "하지만 동료로부터 무료진료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찾아왔는데 약까지 공짜로 지어줘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료진료소는 송파구의사회에 의해 2006년부터 본격 운영이 시작됐다. 지난해 6월부터는 송파구약사회, 제약회사 등이 동참에 나섰다. 현재는 의사 20명과 약사 10여명, 그리고 제약회사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의료봉사단으로 활동중이다.
이날 봉사에 나선 한국MSD의 유홍규(29)씨는 "직장이 제약회사인 데다 치료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기 때문에 봉사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가 자리를 잡는 데는 서대원(44) 원장의 노력이 컸다. 거여동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 원장은 2000년 개원 이후 개인적으로 외국인 무료진료 봉사를 해오다 2006년부터는 뜻이 맞는 의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무료진료 활동을 시작했다.
서 원장은 "거여동, 마천동 일대에는 외국인들이 제법 살고 있다"면서 "이들 중에 불법체류자도 있겠지만 아픈데도 치료를 못 받아서야 되겠냐"면서 인술을 강조했다. 그는 무료진료소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병원으로 불러 추가진료를 해주기도 한다.
무료진료소측은 관내에서 동참하는 의사가 증가해 내달부터는 매월 두 차례로 진료회수를 늘리기로 했다. 내과, 정형외과, 피부과, 소아과 중심에서 한방과, 치과 등으로 진료과목도 늘릴 계획이다.
송파구보건소도 무료진료활동에 필요한 인력과 장소를 지원하고 진료에 소요되는 약제비를 계속 부담하는 등 힘을 보태기로 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