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계간 ‘비평’(생각의나무 발행)이 2009년 여름호(통권 23호)를 끝으로 정간된다. ‘비평’은 김우창, 장회익, 도정일, 최장집, 여건종, 권혁범, 윤평중 등 중량감 있는 학자들이 편집진으로 참여해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한국 사회의 쟁점을 분석해온 계간지다. 2005년 ‘당대비평’과 지난해 ‘사회비평’에 이어 비평까지 정간되면서, 이제 종합 계간지는 ‘창작과 비평’ ‘황해문화’ ‘문화과학’ 등만 남게 됐다.
계간지가 문을 닫는 일차적 원인은 출판 시장의 어려움 때문이다. 계간지는 돈이 되는 책이 아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사들이 출혈을 감수하고 계간지를 내는 것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문학 시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으로, 수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문화사업”이라고 말했다. 계간지의 잇단 정간은 ‘문화사업’까지 할 여력이 더 이상 출판계에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계간지 정간의 이면에는 ‘지성’에 대한 대중의 변한 시각도 자리한다. 계간지는 1970, 80년대 인문ㆍ사회 담론이 대중과 만나는 대표적 통로였다. 서가에 ‘창작과 비평’ 몇 권쯤은 꽂혀 있어야 지성인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의 ‘대중 지성’이 엘리트 지식인의 권위를 무너뜨린 오늘날, 계간지에 실린 드레진 글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무게와 힘을 지니지 않는다.
엘리트 지식인의 발언이 힘을 잃어가는 현상이 곧 인문주의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간지가 담당했던 진중한 담론의 공간 역할을, 속도감이 생명인 인터넷 토론이 100% 대체하기는 힘들 것이다. 무대가 없어지면 결국 배우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발행 부수가 채 1,000부도 되지 않는 계간지의 정간 소식이, 인문 공간의 폐색을 예보하는 경고로 들리는 이유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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