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7> 박정희 대통령은 칭송 받아 마땅할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7> 박정희 대통령은 칭송 받아 마땅할까?

입력
2009.08.10 04:46
0 0

나는 대학시절 박정희 정권을 물리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전념했다. 물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였지만. 과거 박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때나 죽고 난 후 박 대통령더러 정치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을 반대한 민주화투쟁은 정당시됐다. 그랬는데 1990년대 말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박 대통령이 칭송되기 시작해 지금은 영웅시 되고 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 지지 받기도 한다.

왜 이리 됐을까? 주지하는 대로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거고, 독재를 하고 인권을 유린했지만 그 때문에 경제발전의 공적이 묻혀선 안 된다는 거다. 심지어 경제발전을 위해선 독재와 인권유린이 불가피했다는 거다. 사정이 이러니 나처럼 박정희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민주화투쟁에 전념한 건 잘못이 된다. 실제로 민주화투쟁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박대통령에 대한 칭송은 소위 '민주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진 데 따른 반사효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에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도 죽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노무현신드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조문행렬이 이어진 것과 유사하다.

이래도 될까? 후임 대통령이 잘 못한다고 해서 전임 대통령을 무조건 칭송해도 될까? 특히 국가발전에 장애를 조성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과연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와 인권유린이 불가피했는지 검토해보려 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가 상당히 성장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도 그 정도의 경제성장은 이루었을 거고, 심지어 더 잘 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박 대통령의 경제성장정책이 너무 많은 부작용을 가져와 국가발전에 중대한 장애가 된 건 오히려 비난 받아 마땅하다.

지난 60, 70년대 한국경제만 성장한 게 아니다. 미 · 소 대결구도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나라들 곧 독일, 일본, 대만, 한국 등은 다 같이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

한국의 경우, 한일회담의 타결에 따른 일본 자본의 도입, 중동 붐과 월남전 특수 등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좋은 여건에 있었다. 이런 여건에서 경제의 물량적 성장만을 이룰 뿐 국민경제의 안정적 기반을 구축치 못한 건 경제를 잘 운용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일본 자본의 도입에 급급해 한국의 산업을 일본에 종속시킴으로써 대일무역적자가 연간 약 300억 달러(2008년 328억 달러), 1965년 한일회담 타결 후의 누적액이 3,440억 달러에 이르게 한 건 큰 실책이다. 청구권 자금 3억 달러 얻어 쓰고 수 백배의 이익을 안겨준 바, 굴욕적 한일회담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한 건 잘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재벌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어 중소기업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자립기반 구축을 어렵게 했다. 그리고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경제운용으로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이 구조화해 '부패공화국'이 됐는데, 이것은 국제적 수치였다.

경제발전의 전략상 '불균형성장정책'의 채택이 필요했더라도 거기에다 고율의 인플레와 부동산투기를 조장함으로써 빚어진 격심한 빈부격차는 국민 갈등과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고 경제발전의 저해요인도 됐다. 더욱이 농촌에서 밀려나 '산업예비군'이 된 도시 하층민들과 장시간 · 저임금 노동에 시달린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참상 또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의 최대 실정은 '천민자본주의'의 만연에 있다. 자유와 평등, 평화와 복지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물론 법과 도덕까지 내팽개친 경제성장제일주의는 물질만능주의와 퇴폐풍조를 조장해 각종 사회악의 원천이 되었고,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

박 대통령의 경제업적을 칭송하는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예로 많이 드는데, 과연 그럴까?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전에 전국의 철도망을 재정비해서 철도교통을 혁신했더라면 철도가 기본교통수단이 되어 교통비용도 줄이고 '마이카 붐'과 같은 소비벽도 줄였을 거다. 철도를 정비한 다음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김재규의 저격을 받았는데, 그 저변에는 국민의 경제적 불만이 깔려 있었다. 김재규의 저격이 없더라도 민중봉기에 의해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1979년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반독재민주화투쟁은 마침내 부마민중항쟁으로 발전했는데, 이처럼 박정희 정권이 위기에 몰린 근본적 원인은 경제침체였다.

요컨대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발전시킨 대酉?막?칭송돼야 할 이유가 없다. 물량적 성장을 이루어 보릿고개를 넘긴 점이 있지만 그 때문에 경제를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될 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경제를 발전시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면 왜 국민이 지지하지 않았겠는가?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신헌법'의 제정과 헌법개정의 청원조차 금지한 '긴급조치'의 선포는 박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증거다.

더욱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와 인권유린이 불가피했다는 '개발독재'의 논리는 말장난일 뿐이다. 일찍이 선진국이 된 나라들 곧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미국 등은 민주정치 덕분으로 경제가 발전했거니와, 2차대전에서 패해 초토화된 서독과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큰 경제발전을 이룬 것 역시 민주정치 덕분이었다.

이처럼 박정희 대통령을 칭송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칭송하는 건 현실에 대한 불만의 맹목적 표현일 뿐이다. 불과 1년여 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해 놓고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노 대통령을 칭송하는 것이 옳지 않듯이 소위 '민주정부'가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해서 반민주적인 박정희 대통령을 칭송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과거를 잊는 민족에겐 미래도 없다'는데,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나 빨리 잊어서야 어떻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