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있는 8월은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달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뭇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행태에 전율을 느낀다.
일본 삿뽀로 시내 한복판에는 120년 된 유서 깊은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홋카이도의 옛 도청사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 건물 2층엔 아주 특별한 전시실이 하나 있다. 이름 하여 ‘북방영토관’.
전시실의 목적은 일본의 옛 영토을 되찾자는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홋카이도와 캄차카 반도 사이에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일본이 북방영토로 지칭하는 에토로후, 쿠나시리, 시코탄, 하보마이섬)을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 당위성을 알리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일본 영토였고 1855년 러일통상우호조약에 의해 법적으로 일본 소유임이 명확해졌다는 점을 부각한다. 또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령임을 국제적으로 다시 확인 받았으나 러시아가 사인을 거부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전시실 벽면에는 이들 섬을 둘러싼 역사와 전후 60여년 간 지속된 일본 정부의 영토반환 추진 노력을 지도를 곁들여가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DVD 동영상이 상영되고, 영어로 된 팜플렛도 비치해 나누어 주고 있다. 외국인들이라도 일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끔 감정이 아닌 사료와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소위 북방영토 반환을 위한 일본의 전략과 전술을 뜯어보면 ‘독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독도문제에 대해 우리가 대응해온 방식은 두 갈래였다. 시민단체 등 민간의 대응은 감정적이었다. 일본이 우리를 자극할 때 마다 규탄시위를 하는 등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폭발시키다가 이슈가 가라앉으면 잊고 지내기를 반복해왔다.
우리 정부는 오랫동안 일본의 주장에 정면 대응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일본 측의 행동에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이 국제사회에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인식에서이다. 다시 말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를 굳이 내 여자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우리가 잊을만하면 주기적으로 독도 문제를 환기시켜 우리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자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를 찾아내고 연구해서 ‘북방영토’ 문제와 비슷한 논리를 국제사회에 전파시켜오고 있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갈수록 어느 쪽의 논리와 입지가 우세해질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영토문제는 지금 누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방심해선 될 일이 아니다. 논란이 계속된다는 것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논거와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논란을 확실히 종식시키는 전략과 방법은 명확하다. 감정적 대응이나 소극적 대응을 넘어 일본 측이 주장하는 것을 조목조목 제압할 수 있는 사료를 발굴하고 논리를 개발해 누가 보더라도 한국의 주장이 일본 보다 훨씬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사실들을 해외 학계, 언론 등으로부터 공인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국제사회를 우리의 우군으로 만드는데 국가차원의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그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방심은 더더욱 금물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손자병법의 금언은 지금도 진리이다.
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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